“일개 교수가 개혁 선봉장 행세” 친이계 부글
입력 2011-12-29 06:09
한나라당 친이명박계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현 정권 핵심 실세 퇴진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온갖 당내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여당 전체가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다.
퇴진론을 제기한 이상돈 비대위원과 그에 의해 ‘국정실패 책임자’로 지목된 홍준표 전 대표, 이재오 이상득 의원 사이에는 인신공격성 발언이 오가며 정면대결 조짐까지 감지된다.
당 안팎에선 MB정부 기간 내내 벌어졌던 친박근혜계·친이계 간 대결이 비대위 대 친이계의 대리전이 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박근혜 체제와 MB정부 간 단절이 현실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재오 의원과 가까운 장제원 의원은 29일 언론과의 접촉에서 “한나라당이 ‘이상돈 사당(私黨)’이 아니지 않느냐. 당 개혁과 화합에 오히려 저해가 된다”며 “박 비대위원장이 (이 위원에게) 엄중 경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트위터에도 “일개 교수(이 위원)가 마치 개혁의 선봉장이나 되는 것처럼 칼을 긁어대는 게 공천이냐. 그런 막말은 개혁이 아니다”고 썼다.
이재오 의원 본인은 “오늘은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허허허’ 웃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몽준 전 대표는 “소이부답(笑而不答·웃지만 대답은 하지 않겠다)”이라며 불쾌해했다.
친이 직계는 아니지만 당 대표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자주 만나 정책 공감대를 형성했던 홍 전 대표는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천안함이 과잉 무장에 따른 피로골절로 침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 비대위원의 과거 인터넷 기고를 문제 삼으며 ‘색깔론’까지 제기했다. 홍 전 대표는 박 비대위원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종인 비대위원에 대해서도 “검사 시절 함승희 주임검사가 물었는데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에 대해) 자백을 안 해서 내가 들어가 10분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고 공격했다. 그는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요새 하는 것을 보니까”라며 비대위 전반을 비꼬기도 했다.
친이계 한 의원은 “제도와 절차 없이 누구를 나가라고 하느냐”면서 “자기들 살겠다고 대통령을 저격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구태이자 비겁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의원은 “계속 이런 식이라면 비대위원을 교체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흥분했다. 당 안팎에서는 “자기들이 무슨 대통령 인수위나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상돈 비대위원은 ‘사견’이라고 수위를 낮추긴 했지만 철회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김종인 비대위원도 라디오에 출연, 금품수수 혐의로 보좌관이 구속된 이상득 의원을 향해 “본인이 적절히 처신하리라 본다”며 정계은퇴를 촉구했다. 또 TV에 나가 “(전체) 비대위원들의 생각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엔 일반 국민들 생각이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동조했다.
더욱이 박 비대위원장은 이 위원 사견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이날 의원총회에서 피력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나서서 말려 달라’는 친이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얘기다.
친박계도 표면적으로는 친이계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MB정부 실세 퇴진론에는 동감했다. 한 의원은 “국민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 당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가야 하는 것”이라고 공감했다. 친박계 의원 대다수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거나 “방법론적으로 조금 세련될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붙여 “어떤 식으로든 MB와의 단절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비쳤다.
쇄신파 권영진 의원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생각을 얘기해 준 것이다. 우리에겐 아픈 이야기지만 국민의 상식을 대변한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친이계지만 쇄신파로 뛰며 재창당을 주장했던 원희룡 의원은 “방향을 잘 잡고 있고, ‘점령군’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해야 한다”며 비대위를 적극 지지했다. 그는 “거침없이 하면 좋겠다. 기득권, 계파 안정 등에 연연하다가는 한나라당의 창조적 파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