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솔섬’ 펴낸 안정효 씨 “국민이 정치권 흔드는 시대… 거침없이 썼다”

입력 2011-12-29 18:07


‘막소설’이라는 게 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70)씨가 16년 만의 침묵을 깨고 펴낸 장편 ‘솔섬’(나남출판사)에 붙인 신조어다. 원고지 6000장에 달하는 3권짜리 전작 장편 ‘솔섬’을 두고 왜 ‘막소설’이라고 명명했는지 궁금했다. 29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대답했다.

“‘막’이라는 말은 우선 우리말이어서 좋고, 짧아서 좋아요. ‘막’은 자유를 의미하지요. 막 써서 ‘막소설’이 아니라 나이가 나처럼 칠십쯤 되면 아무 부담 없이, 심지어는 사치스러운 창작의 고통도 느끼지 않고 논리를 초월해 거침없이 쓰게 되거든요. 그걸 환갑 때 깨달았어요. 여태까지 내가 썼던 모든 작품보다 훌륭한 걸작을 써야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짓은 자신을 가혹하게 괴롭히는 일이지요. 나의 대표작을 이미 써냈는지도 모르겠다는 인식은 나를 욕심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켰고 요즈음은 글쓰기가 아주 편합니다.”

‘솔섬’은 판타지와 역사와 정치와 풍자가 맞물려 있는데다 판소리 명창이 쏟아내는 사설처럼 숱한 조어(造語)와 기상천외한 알레고리가 소설의 재미와 생명력을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경기도 서해군 송도리라는 가상의 지명. 주민들은 그곳을 솔섬이라고 부른다. 주민은 12가구 18명뿐이어서 투표시간은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폐기청 국장이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장소로 솔섬을 낙점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2007년에 시작해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1945년에 마침표를 찍는 역발상도 흥미롭다.

“일종의 정치풍자 외피를 입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지요. 세상은 모든 게 맞물리게 마련인데 세상이 안 풀리면 모든 분야가 꼬여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요즘 모든 사람들이 개탄하는 게 정치 아닙니까. 시대의 중병을 앓고 있지요. 과거 이승만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만 읽는 신문을 따로 만들어 올렸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연습도 못해본 민주주의를 하던 시대지만 지금은 정치에 대해 정치인들이 시민들보다 모르는 시대가 아닙니까. 국민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훈련시키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자는 등장인물 이름이다. 대통령 이름은 이세환 박세환 전세환 노세환이고 재벌총수는 한재산, 깡패두목은 조패구, 장례식장 이름은 ‘I go’다. 작가는 이들 인물 각각에게 줄을 묶어놓고 이쪽저쪽 잡아당겨 마음대로 조정한다.

“풍자의 대상이 소설을 읽고 웃을 수 있다면 그 풍자는 성공한 것이죠. 근데 우리 현실에서는 그게 어렵지요.” 솔섬을 배경으로 한 차기작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이번 작품에 삽입된 36컷의 삽화를 직접 그려 넣었다”며 “한때 인생의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만화가 지망생이었다”고 귀띔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