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쇄빙선
입력 2011-12-29 18:12
남·북극 얼음 바다를 항해하는데 쇄빙선(碎氷船)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극권보다 거주 인구가 훨씬 많은 북극권 국가들이 쇄빙선을 애용하고 있다. 최초의 쇄빙선은 1800년대 초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뱃머리를 철판으로 만들거나 두꺼운 나무에 철판을 덮어서 사용했다. 증기엔진을 단 쇄빙선은 1800년대 말 건조됐다.
가장 큰 쇄빙선은 원자력 추진기관을 장착한 러시아의 아르크티카호. 길이는 140m, 무게는 2만4000t에 달한다. 극지방의 얼음 바다를 항해할 정도의 대형 쇄빙선은 전 세계적으로 60여척 정도 된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 핀란드 등 북극권 국가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쇄빙선은 항해 형태에 따라 유도형(誘導型)과 독항형(獨航型)으로 나뉜다. 유도형은 뒤따라오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얼음을 깨서 항로를 만들고, 독항형은 단독 항해를 목적으로 한다. 화물을 싣고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캐나다의 아크틱호, 오호츠크해의 유빙 관광에 투입되는 일본 오로라호 등이 독항형이다. 한국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는 유도·독항형 항해를 할 수 있는 전천후 쇄빙선이다.
기자가 1999년 2월 남극을 방문했을 때 세종과학기지 대원들은 한결같이 쇄빙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동행한 김예동 박사(현 극지연구소 남극내륙기지사업단 단장)는 “외국 쇄빙선을 빌리는 데 하루 8000만원 정도 든다”며 “그러나 연구하기에 적합한 시기에는 빌리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2003년 12월 전재규 대원이 고무보트를 타고 탐사활동을 벌이다 남극해에 빠져 숨지자 해양 과학자들은 “쇄빙선만 있었더라면…”하면서 안타까워했다.
2009년 11월 우리나라도 마침내 쇄빙선을 갖게 됐다. 이를 계기로 공동연구를 제안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극지연구에 관한 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아라온호는 헬기 이착륙장과 격납고, 자동위치조정시스템, 첨단 연구 장비 등을 갖췄다. 바다에 떠 있는 해양연구소인 셈이다. 후미에 달린 프로펠러 2개가 360도 회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전·후진은 물론 좌우 이동도 가능하다. 두께 1m의 얼음을 깨면서 시속 5.5㎞로, 얼음이 없으면 시속 30㎞ 정도로 운항할 수 있다.
최근 남극해에서 좌초된 러시아 어선 스파르타호를 구조하고, 물길을 열어준 아라온호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위선양과 극지연구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아라온호여, 영원하라!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