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 쿠바 재즈 선율을 타고 흐르는 피아니스트의 사랑
입력 2011-12-29 18:05
쿠바 재즈 음악을 소재로 그린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는 생의 끝머리에 다다른 노인 치코의 옛 시절 회상으로 막이 오른다. 거리를 가득 채웠던 선동적인 혁명의 노래 대신에 젊은이들의 속사포처럼 빠른 랩이 골목길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치코가 떠올리는 과거는 남루하기만 하다.
1948년 쿠바 아바나.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는 별빛이 찬란한 어느 밤, 클럽에서 ‘베사메 무초’를 부르는 여가수 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여자 마음을 훔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치코는 그날 밤 리타와 사랑을 나누지만, 새벽에 찾아온 여자 친구 때문에 둘은 다툼 끝에 헤어진다.
이후 치코의 끈질긴 설득으로 두 사람은 한 무대에 서게 되고 마침내 사랑의 늪에 빠져든다. 그러나 리타가 더 큰 무대를 위해 미국 뉴욕으로 떠나면서 둘의 사랑은 종지부를 찍는다. 그렇게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선배 음악가를 찾아 뉴욕을 방문한 치코는 이미 스타가 된 리타와 우연히 마주친다.
영화는 치코와 리타의 애잔한 사랑을 바탕으로 쿠바 출신의 유명 재즈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의 연주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 1940∼5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비밥(bebop)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려준다. 가수 리타 목소리를 연기한 리마라 메니시스의 고음도 매력적이다.
‘아름다운 시절’(1992)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은 음악의 리듬을 타고 반세기가 넘는 남녀의 인연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았다. 남녀 주인공 캐릭터가 음악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 아쉽다. 애니메이션보다는 실사 영화로 제작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경쟁부문 대상 수상작. 1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