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에 숨은 석궁테러의 진실은 과연… 영화 ‘부러진 화살’ 1월 19일 개봉
입력 2011-12-29 18:05
2007년 1월 15일,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박홍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집 앞에서 박 판사에게 석궁을 쐈다는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 전 교수는 1996년 재임용 탈락이 확정돼 교수지위 확인 청구 소송을 벌였으나 잇따라 패소하자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박 판사를 찾아가 테러를 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영화 ‘부러진 화살’은 판결에 불만을 품은 보복 범행 정도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사건의 진실을 재판 속기록을 근거로 파헤쳐 가는 과정을 담았다. “판사의 목숨을 노린 테러에 엄중 대처하겠다”는 당시 사법 당국의 단호한 의지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 이면에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진실이 숨어 있다는 말인가.
동명의 르포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민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건드리면서도 매끄러운 호흡으로 드라마와 유머를 잘 조화시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캐릭터와 에피소드에서는 상당 부분 허구를 가미했다. 김 전 교수는 김경호(안성기), 박 판사는 박봉주(김응수), 교수 변론을 맡은 박훈 변호사는 박준(박원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학과 교수인 김경호는 재직 중인 학교에서 동료 교수가 출제한 대입 시험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고, 명예를 앞세운 학교 측은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경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다. 김경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첫 장면이다. 원칙을 목숨처럼 지키는 사람이어서 그 틀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답답한 고집불통이다.
장면은 법정으로 전환되고 박 판사는 피가 묻은 옷을 증거로 내밀며 자신이 테러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경호는 위협만 했을 뿐 판사를 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꼴통’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경호는 누구든 자신의 말을 끊으면 화를 내고 판사에게 법전을 들먹이며 독설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 전문 변호사 박준이 사건을 맡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박 판사의 러닝과 외투에는 피가 묻어 있지만 셔츠에는 핏자국이 없는 점, 이 옷가지들의 혈흔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점, 박 판사가 수거했다고 하는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제시되지 않은 점 등을 변호사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만 재판부는 “검찰에서 이미 충분히 조사한 사안”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많은 부분을 재판 과정에 할애한 ‘부러진 화살’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재판부의 오만함과 안하무인적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영화 ‘도가니’와 비슷하다. ‘도가니’가 변호사와 판사의 결탁을 다루었다면 ‘부러진 화살’은 피고의 인권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재판부의 구태를 겨냥했다. 영화가 개봉되면 ‘도가니’처럼 사회적 파장이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묻는 ‘부러진 화살’은 묵직한 주제에도 시종일관 유머가 넘친다. 좌충우돌하면서도 정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박준 변호사 역을 맡은 박원상의 연기 덕분이다. ‘까’ 이후 13년 만에 복귀한 정지영 감독의 노련미와 ‘하얀전쟁’ 이후 20년 만에 정 감독과 의기투합한 안성기의 연기력도 영화를 빛낸다. 1월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