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24) 내 삶 원동력은 10여년 지켜온 ‘출근 전 기도’

입력 2011-12-29 14:54


나는 장군이 되어서는 ‘출근 전 기도’를 했다. 야근 또는 야간 훈련 식사모임 등으로 불규칙하게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아 새벽기도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고, 예배 후에는 잠시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꼭 한두 명 가량 통성으로 기도하는 분이 계셔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역을 할 때까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출근 전 기도를 했다. 관사에서 20∼30분 전에 출발하여 교회로 들어가서 하루의 일정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일정마다 참모나 예하부대 지휘관에게 지침을 주어야 할 내용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때로는 중얼거려 보기도 했다. 결심이 서지 않는 일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이 ‘출근 전 기도’의 효과는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먼저 나를 수행하는 전속부관과 운전병을 기도하게 만든다. 그 날 있을 각종 회의, 행사, 신고, 시범 등에서 내가 해야 할 코멘트의 핵심 키워드가 정리되었다. 때로는 부하들의 입장과 상급부대의 고민들을 떠올려 보는 역지사지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해결되기 어려운 일들도 헤쳐 나갈 묘안이 떠오르기도 했다. 계급과 직책이 개인이 해야 할 모든 지혜를 저절로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 ‘출근 전 기도’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 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전역식이 있던 날도 나는 ‘출근 전 기도’를 했다. “하나님,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저를 육군 대장까지 높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샘솟는 지혜를 주셔서 부끄럽지 않은 저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후반전도 모범이 되는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 원합니다.”

전역 후에는 참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분야별로 전문가인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던 모든 일들을 이제는 혼자서 하려니 아는 게 없었다. 특히 운전하는 문제는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앞으로는 잘 가겠는데 좌우측 차 사이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간간이 대상도 없는 불평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전역 후 오래지 않아 소강석 담임목사님이 부르셔서 할 일을 주셨다. 새에덴교회는 벌써 5년 전부터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기도 하고 미국으로 가서 위로행사를 하기도 했다. 행사의 실무를 담당하는 해군제독 출신 김종대 장로님을 도와드리는 것이었다. 작년에는 100여 명의 참전 용사들이 내가 사령관으로 있던 2작전사령부를 방문했다. 전 장병과 대구·경북 주민들과 함께 그들을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올해 6월 15일부터 20일까지는 참전용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판문점과 연합사령부를 방문하고 천안함을 견학하는 등 보은행사를 열었다.

이어 6월 22일에는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가졌다.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미 상·하원 의원들이 참가하여 새에덴교회와 소 목사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오랜 만에 예복을 입고 인사말을 했다.

“먼저 우리나라가 공산군의 침략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피 흘려 지켜주신 참전용사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둘째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미국의회 의원 여러분과 미국 시민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해야 할 이런 행사를 한·미 유대 강화와 순수한 애국심으로 시행하시는 소강석 목사님과 새에덴교회 성도 여러분에게 군 출신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도 새에덴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