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넘은 학교폭력] 학교는 지금, 돌봄 기능 없고 ‘폭력사회 축소판’
입력 2011-12-28 19:12
학교폭력은 단순히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힘과 폭력이 미화된 사회 분위기가 교실에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다.
가정과 사회의 폭력이 교실로 스며들어 아무 죄의식 없이 친구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폭력과 ‘왕따’를 보면서도 침묵하는 잘못된 교실 문화가 팽배해졌다. 전문가들은 교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배우는 곳이 아닌 힘이 지배하는 곳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교실에 민주주의가 없다”=청소년 정신건강 분야 전문가인 김현수 관동대 명지병원 정신과 교수는 28일 “지금의 학교는 돌봄 기능이 퇴화되고 폭력은 넘쳐나는 폭력사회이자 결핍사회”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폭력성과 선정성이 가득한 미디어에 노출된 학생의 분노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지면서 학교폭력의 잔인성도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교실 내 폭력 유형을 마초적 가해자, 전이형 가해자, 참모형 가해자, 복수형 가해자로 분류했다. 마초적 가해자는 또래집단 내 ‘일진’ 등 두목 격 학생이 우월한 힘을 보여주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유형이다. 잘못된 가부장적 역할 모델이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다. 전이형 가해자는 가족이나 학교에 대한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또래 학생에게 분풀이성 폭력으로 해소하기 때문에 충동적인 성향을 보인다. 피해학생을 괴롭히는 방법도 다양하다. 참모형 가해자는 직접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옆에서 괴롭힘을 선동하는 유형이다. 복수형 가해자는 폭력 피해 경험이 가해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다. 최근에는 마초적 가해 유형보다 전이적·참모형 가해 유형이 늘고 있는 추세다.
김 교수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자 학생은 물리적 폭력보다 머리를 써 친구를 괴롭힌 점으로 볼 때 마초형보다는 전이형 또는 참모형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만화, 게임을 통해 청소년은 폭력을 미화하고,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교실에서 재현된다”며 “친구가 피해를 당해도 모른척하는 방조자 학생 역시 남의 일에 무관심한 어른 사회와 그대로 닮았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가해 학생 수가 많고, 이들에게 동조하는 문화가 만연된 것이 우리나라 학교폭력의 가장 큰 특징”이라며 “교실에 민주주의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정폭력이 학교폭력으로 이어진다”=김재엽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순호 서해대학 케어사회복지과 교수와 함께 전북지역 중1∼고2 학생 930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부모 간 폭력을 목격한 청소년이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부모 간 폭력 목격 경험이 많을수록 공격성이 증가하고 공격성이 높은 학생일수록 학교폭력 가해 경험이 많다고 설명했다. 폭력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공격성을 높이고, 이 공격성을 학교에서 해소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격성을 드러낸 학생의 수도 엄청나다. 조사 대상자 중 지난 1년간 구타나 금품 갈취, 집단 따돌림 등 한 가지 유형 이상 학교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476명(51.7%)에 달했다. 연구팀은 “학생이 어린시절 본 폭력적인 행동을 내면화해 공격성을 갖게 됨으로써 또래집단과의 관계에서도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부모 사이에 폭력을 경험한 청소년의 부정적 감정을 해소시킬 상담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