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학자 백소영이 만난 사람] 詩로 복음 전하는 김소엽 권사
입력 2011-12-28 18:31
“파도의 아픔 뒤 소금 내는 바다처럼…”
“그래, 아가! 지금 새벽 2시 아니니? 피곤하겠다. 얼른 자라. 곧 만나자∼” 미시간대 연구원으로 있는 딸과 정감어린 전화를 나누는 그녀는 따스한 ‘엄마’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시는커녕 문학에는 문외한인 까닭에 마냥 어려웠던 만남임에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대접받은 보이차의 온기와 갓 구운 붕어빵도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렇게 여의도 월드비전 빌딩, 선생이 회장으로 있는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 사무실에서 시인 ‘김소엽’ 권사와 따뜻한 만남을 가졌다.
“단 한 줄의 시를 남겨도 좋으니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시를 쓰시오.” 1985년 급작스레 선생의 곁을 떠난 남편이 유언처럼 남겼던 말이다. 1980년대 젊은이들의 사회적 저항이 집결된 장소였던 연세대에서 ‘연세춘추’ 주간에, 학생상담을 맡았던 영문과 양영재 교수가 선생의 남편이다. 유난히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연이은 밤샘으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질 못했다.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삶 전체가 온통 신앙 중심이어서 ‘작은 예수’라 불렸던 이였다. 무엇보다 선생에게는 큰 나무, 넓은 바다처럼 든든한 지지대였고 울타리였던 단 한 사람이었다. 슬픔과 절망에 아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따라 죽으리라. 그 마음에 신혼여행지였던 충무의 바닷가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출렁이는 파도를 보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파도는 왜 치는 걸까?” 아, 세상의 온갖 더러운 물, 불순물들을 열려진 모성으로 받아들이니 ‘바다’인가보다. 그리 받아들이려니 얼마나 아플까, 그 아픔이 전해져왔다. 그래. 그리 아파 못 견뎌 몸부림치다보니 파도로 일렁이게 되고, 그렇게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이구나! 부패함을 막는 존재,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소금은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며 탄생하는 것이구나! 김소엽 선생의 시 ‘바다에 뜬 별’은 그렇게 탄생했다.
‘부서져야 하리 더 많이 부서져야 하리 이생의 욕심이 하얗게 소금이 될 때까지/무너져야 하리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 억 만 번 부딪쳐 푸른 상처로 질펀히 드러눕기까지/…씻겨야 하리 더 많이 씻기고 또 씻겨 제 몸 속살까지 하늘에 비춰야 하리…
돌이켜보니 그녀가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된 것 역시 급작스런 상실감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동네에서 처음으로 신앙인이 되신 분이고 한 달이 멀다하고 시루떡을 한 가마니씩 쪄서 동네에 돌리며 복음을 전하던 분이셨다. 선생은 어머니를 여의었던 그 해 어버이날, 학교와 교회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그리는 시를 썼다. 실은 그날부터 시인의 꿈을 꾸었다. 장원으로 뽑힌 그에게 장차 훌륭한 시인이 될 거라고 격려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문학을 공부해 세계의 명시들을 두루 배워 좋은 시를 써야겠다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객관적 상황은 좋지 못했지만 새벽녘 교회 제단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고 연이어 영어학원으로 달려갔던 시절도 있었다. 소녀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의 준비하심이 너무나 감사하였다. “기적이요? 난 그 말을 은혜로 바꾸고 싶어요. 대전에서 서울로 유학 올 수 있었던 것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죽겠다 결심하며 섰던 그 바닷가에서 문득 파도가 치는 까닭이 궁금해졌던 그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셨으니 가능했던 일 아닐까요?” 그녀의 시 한 소절을 떠올리는 말이었다.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보이지 않는 그 분의 섭리와 은혜가 있은 까닭입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절망감에 그리 외치던 순간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다. 아, 예수님조차도 육신의 고통을 어쩌지 못하시고 십자가에서 그리 절규하셨지! 아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침묵하셨던 하나님께 부활까지의 그 사흘은 얼마나 길고 긴 아픔의 시간이셨을까?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아 순종하시는 것, 그것을 기다리시며 침묵하셨던 고통이 비로소 느껴졌다. “아버지의 아픔을 처음으로 느끼고 나서야 십자가의 한 끝자락을 붙잡았습니다. 십자가는 아들의 온전한 순종과 아버지의 뼈를 깎는 침묵이 만나 이룬 구원 사건입니다. 그 어느 인간도 아픔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십자가의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선하고 의로웠던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도, 그리고 그녀가 남겨진 까닭도 다 이 놀라운 구속사 안에서 받아들여졌다.
마침표, 쉼표, 물음표, 따옴표, 그리고 느낌표! 세계 언어의 공통부호 다섯 개로 인생을 표현하는 선생은 자신의 삶에 이제 느낌표만 남았다고 고백한다. ‘가신님의 유업을 받들고 남은 생을 부끄러움 없이 살고 난 후 기쁨으로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새해부터는 국민일보와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와 좋은시 낭송 콘테스트도 계획한다면서, 무엇보다 한국교회가 21세기 문화선교의 중요성과 긴박성을 인식하고 물심양면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다. 열정에 찬 선생의 모습에서 ‘시로써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 선교사로 부름받았다는 그녀의 고백이 선명하게 보였다.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시어를 지어내며 하루하루 감사함으로 살아갈 그녀의 남은 날들도….
김소엽 권사
1944년 충남 논산 출생.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보성여고 교사, 호서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7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 ‘어느 날의 고백’ 등과 수필집 ‘사랑하나 별이 되어’ 등 다수 출간. 윤동주 문학상과 한국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