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조용래] 3·11이 제기하는 것들
입력 2011-12-28 18:33
세밑이다. 올 10대 뉴스가 발표되고 사람들은 경기가 좋지 않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지인들을 만나는 데 분주하다. 모두들 나름의 시각으로 올 한 해를 돌아보겠다는 뜻이겠다.
2011년 역시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 딱 하나만 꼽자면 3·11 동일본대지진이 아닐까 싶다. 2만명 가까운 희생자에,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원전 폭발사고까지 겹치면서 자연과 인공의 재해로 비화됐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지난 30년 가깝게 일본을 관찰해온 까닭인지 그들의 재난은 곧 아픔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대지진이 터진 지 나흘 만에 도쿄 취재를 갔었고, 재해 발생 9개월 시점인 이달 초엔 일본 미야기(宮城)현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 쓰나미 피해현장을 취재하기도 해 3·11은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
피해지역은 9개월이나 지났지만 쓰나미가 휩쓸고 간 흔적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해안가 논밭은 아직 바닷물에 잠겨 있고, 쓰나미에 쓸려와 오마가리(大曲)해안 마을을 덮쳤던 대형 화물선은 그대로 방치돼 있어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피해지역이 아직까지 말끔하게 치워지지 않은 것을 보며 처음엔 일본 특유의 신속하지 못한 의사결정 구조나 일본 정치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거기엔 보다 본질적인 것이 숨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와 그것을 오랫동안 거역해온 인간들의 삶, 그리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역사를 돌이켜 봐야 하는 문제였다.
취재 당시 만났던 일본사상사학자 아카사카 노리오(赤坂憲雄) 가쿠슈인(學習院)대학 교수는 쓰나미 피해지역은 대부분이 원래 ‘가타(潟·석) 지형’으로 밀물 땐 바다가 되고 썰물이 되면 육지로 바뀌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간척을 해서 농토로, 삶터로 재탄생한 곳이라고 했다. ‘가타’는 우리말로는 석호(潟湖)가 있는 해안습지 정도다. 강릉 경포, 고성 화진포가 대표적이다.
바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뭍도 아닌 곳을 땅으로 바꿔나갔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지진이 거의 없는 곳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지진대국 일본으로서는 지진과 더불어 휘몰아쳐 오는 쓰나미를 감안하면 위험천만한 도전이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국가 일본의 식량공급을 위해, 자기 토지를 갖지 못한 가난한 백성들의 거주지로서 바로 그 ‘가타’가 개발돼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이번과 같은 일본 도호쿠(東北)지방의 쓰나미 피해는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따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은 쓰나미 피해를 겪고도 다시 그 자리에서 삶의 터전을 꾸려야 했다.
쓰나미가 몰아쳤던 그곳, ‘가타 간척지’는 원래 자연의 영역이었는데 오랫동안 인간은 필요를 앞세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아왔다. 이는 인구증가·식량부족 시대의 고육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3·11을 맞은 것이었다.
피해 현지 주민들은 복구를 말하지만 원래의 터전으로 되돌려놓을 것인지, 이제는 자연의 영역을 자연에게 내주고 새 터전으로 옮겨가야 할 것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복구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닷물에 잠긴 농토를 복구하는 문제를 두고도 어쨌거나 원래 살던 터전 회복에 초점을 맞추자는 주장과 이미 인구감소·식량풍요 시대에 들어섰으니 해안가를 벗어나 고지대로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립하는 상황이다. 피해지에서는 지금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절실하게 거론되고 있다.
요즘 ‘자연친화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이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용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피력하면서 표현만을 유화적으로 조율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환경파괴, 지구온난화, 지속가능한 성장 등 수없이 쏟아지는 지구적인 현안은 자연의 역린을 건드려온 인류의 마지막 고백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3·11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경계의 본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한 해가 저문다.
조용래 카피리더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