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길병옥] 평화통일, 기회와 선택

입력 2011-12-28 18:33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대한 전환점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도래했다. 시공간적으로 변화를 위한 시점이고 변화를 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에는 평화통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냉전이 붕괴된 시점과 김일성 사망 시기 등이 가능한 시점이었다.

평화통일은 내부의 변화시도와 외부협력에 의한 조합이 가장 이상적이다. 김정일 장례 이후 김정은 체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세습권력의 안정화는 물론 이반된 민심과 경제난 해소, 만연된 부정부패 척결, 고립된 대내외 환경 개선, 내부 사회질서 유지 등 산적해 있다. 하지만 아직 김정은의 통치역량은 입증되지 않았다. 대내외적인 외교력과 지도력 어느 것 하나 검증되지 못한 상태이다. 짧은 후계자 기간으로 인해 권력기반이 약한 점 등으로 미뤄 북한의 폐쇄정책을 크게 바꾸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있고, 과도기의 집단지도체제 유지 또는 권력투쟁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당·정·군 기득권에 의한 통치형식이든 위임된 권한에 의한 지배든 현실적으로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론이다. 백성을 우선시하는 선민정치(先民政治) 또는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를 우선시하는 선경정치(先經政治)는 당장 가능성이 떨어진다.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위기, 군부를 앞세운 강성대국 건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문제 등 내정문제뿐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고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현재의 당·정·군 기득권 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결국 누가 북한 지배구조를 이끌어가든 북한체제 전반에 걸친 전향적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단시간 내에 북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고 김정은 권력세습 과정을 보더라도 과연 ‘북한의 봄’이 가능할지 그 전도는 요원하다. 어느 형태든 북한 주민들은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바로 이 시점에 북한 정권의 권력세습과 독재국가로의 안정된 권력의 전이가 아니라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생각해야 된다.

현 시점에서 가난과 굶주림, 희망 없는 미래, 불안한 사회, 그리고 억압과 핍박하는 북한 정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중국은 북한의 변화보다는 현상유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북한의 권력세습을 인정하고, 경제원조를 통해 폐쇄적인 북한을 지원하며, 북한 핵문제 해결에 미온적이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서도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북한권력에 이상기후라든지, 체제변화의 경착륙 내지는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든지, 국지적 도발 가능성 또는 제3의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든지 등을 추론하기 전에 미국은 북한 정권의 변화와 주민생활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미국은 탈냉전이 시작할 무렵부터 베트남을 변화시켰다. 지난 20여년간 베트남에 투자한 해외직접투자(FDI)만 해도 약 600억 달러 정도 된다. 남북한의 통일비용을 생각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 상태를 유지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는 미국의 선택이다.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포괄적 패키지와 함께 변화된 국제사회로의 초대장을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 북한 지도부에게 전해주고 체제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체제변화는 국제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미국은 북한 주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이 중요한 역사적 시점이다. 과연 미국이 할 수 있을까.

길병옥 충남대 교수 평화안보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