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중국이 정한 질서
입력 2011-12-27 18:47
“대화가 없는 것은 남북한 관계 관리에 좋지 않다. 안정적 대화 채널을 가져야 한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방중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나 남북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기금 마련을 통일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면서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이에 앞서 류 장관은 중국 외교의 실무 사령탑인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비롯해 왕자루이 당 대외연락부장, 양제츠 외교부장 등을 만나 우리 통일 정책의 개요와 취지를 설명했다. 류 장관은 “통일 환경을 우호적으로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워싱턴에 이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침 그날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1주년 되는 날이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당시 주중 대사였던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대사관저 내 텃밭을 가꾸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하니 그때 심정이 오죽했으랴 싶었다.
류 장관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역시 북한과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유가족의 조문을 허용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역할은 컸다. 김일성 주석 사망 때보다 진일보한 자세여서 다행이다. 그는 최근 ‘통일 외교’를 위해 주중 대사관 참사관을 정책보좌관으로 기용했다. 통일부가 워싱턴, 베이징,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에 파견한 ‘통일관’을 독일, 러시아 대사관에까지 보내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 사망 뒤 우리 정부가 보인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김정일 사후 북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못한 채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다 뒤늦게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간 만남에 나섰다.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찬을 겸한 회담을 갖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이다.
중국이 발 빠르게 ‘김정은 체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한 뒤 미국도 이에 동조하자 허둥지둥 6자회담 수석대표를 중국으로 보낸 게 우리 정부의 현주소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 정세를 주도적으로 규정한 뒤 수동적으로 ‘기존 질서’에 편입한 꼴이다.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혼란이 생긴다면 그건 우리에게도 재앙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이번에 선도적으로 북한 체제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천명해야 했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을 향해서도 먼저 우리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정부가 ‘김정일 사후’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은 제대로 된 대북 정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우리의 뜻대로 북한 문제를 주도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의 입장은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없이 워싱턴과 베이징만 쳐다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최근 상황에 대해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따끔하게 지적했다. “한반도 문제가 우리 생각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만 주변국들은 우리가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보여주지 못한 채 끌려만 가고 있다.”
통일 기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보수·진보 틈바구니에서 이를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지 못하는 기색이다. 류 장관은 “통일 기금은 급격한 흡수 통일이 아니라 점진적 평화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통일 열차를 타려는 노력을 주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그럴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중국과 북한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보면.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