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디어렙 법안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길

입력 2011-12-27 18:45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가 타결한 미디어렙 법안이 어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거부됐다. 연내 입법이라는 명분에 쫓겨 미디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내용을 걸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의 광고영업을 미디어렙에 위탁해야 하는 의무조항을 2년간 유예한 것이나, 미디어렙의 방송사 소유지분 40% 허용이 대표적이다.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방송의 공공성을 송두리째 부인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방송을 공공재가 아닌 일개 기업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있다. 법안대로 종편에 2년간 광고영업을 허용할 경우 고삐 풀린 망아지가 시장을 휘저을 것이 뻔하다. 방송제작과 광고의 분리라는 대원칙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한번 무너진 질서를 2년 후에 복원하기란 불가능하다. 방송은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무기로 변한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방송이 시청자를 볼모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방송을 ‘1공영 다민영’으로 분류한 것도 종편을 봐주기 위해 억지 구도일 뿐이다. 종편4사를 포함한 민영에게만 독자영업의 길을 터놓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여기에다 미디어렙에 방송사 지분 40%를 허용한다는 것은 ‘2년 유예’라는 조건이 자가당착임을 보여준다. 설사 2년 뒤 종편이 미디어렙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40%라면 충분한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분이기에 꼼수라는 지적이다.

이 법안은 숙려기간도 없이 연말쯤 본회의를 통과시킨다는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민주당 의총의 벽을 넘지 못했다. 여야 합의사항을 뒤집은 것은 유감이지만 법안이 담고있는 독소조항을 고려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국회는 빗발치는 반대여론을 받들어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미디어렙의 틀을 부수는 현행 법안을 폐기하는 대신 방송의 공공성과 건전한 미디어시장의 발전을 담보할 내용으로 새로 만들 것을 권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방송정책의 퇴행을 가져온 과오로 인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