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희옥] 김정은 체제를 보는 중국의 눈

입력 2011-12-27 18:46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세계가 북한을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새 판짜기’가 시작되었고 이중에서 중국의 행보가 가장 인상적이다. 중국이 김 위원장의 유고를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중국이 사전 매뉴얼에 따라 정교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중국이 이 사태를 오랫동안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외교부는 김 위원장 사망 당일 오후 4시 “깊은 애도를 표하고 북한 인민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표시한다”는 조의를 우선 타전했다. 또 이례적으로 주변국 대사를 초치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메시지도 전달했다. 이어 오후 9시 당중앙위원회,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무원 공동명의로 북한에 조전을 보냈다. 여기에서 중국은 “조선 인민들이 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김정은 동지의 영도 하에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한반도의 장기적인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전진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히면서 즉각적으로 북한의 후계체제를 인정했다.

김정일 사망 미리 대비한 中

사실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인정한 것은 북한이 후계작업을 공고화하고 있던 2009년 7월경까지 거슬러 갈 수 있다. 이 무렵 중국은 ‘조선혁명의 계승문제’에 대한 논란을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에 다시 주목하면서 대북정책을 전환했다.

당시 북한도 내부정비를 마치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억류 여기자를 석방하는 등 대외환경의 변화를 꾀했다. 이후 김정은은 평양과 베이징을 무대로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 주요 지도부와 교류하면서 권력을 공고화했다. 후진타오 등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조문을 마친 후 외교부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편리한 시기에 언제든지 중국을 방문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중국이 북·중관계 공고화를 이처럼 빠르게 과시한 배경은 무엇인가. 중국의 대전략 속에서 북한체제의 안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제사회에 중국의 입장을 신속히 알림으로써 관련국가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한반도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 정부도 ‘북한주민에 조의를 표하고 관련인사의 대북조문을 허용’하는 절충안을 통해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도했고, 미국 일본 러시아도 북한에 조의를 표하면서 배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문제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한 정책을 취했다.

중국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북한은 이미 시작해온 후계체제를 본격적이고 신속하게 구축하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한편 ‘김일성 민족’ 을 강조하고 김정일 유훈정치를 재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문을 닫아걸고 체제를 단속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관련국 행동반경 제약 기도

역설적으로 선군정치를 위해 체제를 정비하고 이 작업이 일단락되면 개방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다. 강성대국 선포를 앞두고 ‘업적을 통한 정당화(performance legitimacy)’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김 위원장 유고 이전에 이미 ‘세계로’를 강조하고 중국경험을 학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

김정일 이후의 북한은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주고 있다.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향적으로 조정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두 손을 놓고 있기보다는 한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위험을 피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조를 내년 2월의 북한 정치일정, 키 리졸브 훈련, 핵안보 정상회담까지 연계하는 세심하고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희옥(성균관대 교수·정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