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담대한 믿음 선배들이 주는 신앙 나침반
입력 2011-12-27 18:19
이것이 복음이다/라은성 지음/페텔
기독교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구원 이후 삶이 만사형통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신앙생활은 자동 항법 장치에 따라 하늘 길을 따라가는 비행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폭풍우가 몰아칠지 모르는 바닷길 같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개혁주의 역사신학자이자 교회사아카데미 대표인 라은성 교수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 과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교회 역사를 통해 점검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복음이다’는 강렬한 제목을 단 이 책은 이른바 ‘역사적 신앙’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저스틴 마터’로 알려진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165년경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은 순교자이자 최초의 기독교 변증가다. 죽음 앞에 섰을 때 로마 장관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유스티누스는 이름 대신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같은 답변은 당시 순교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이 대답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자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행적 속에서 ‘기독교 신앙은 그분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신앙은 예수의 인격 그 자체에 기반을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를 믿는 것은 그의 인격을 믿는 것이다. 순교자들은 신앙 대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았다.
이단에 대한 분별 방법도 교회사에서 찾을 수 있다. 영지주의는 3세기 초 등장해 지금까지 이단의 뿌리가 되는 사상이다. 육체를 제압하는 영적 지식을 통해 초월적 영적 영역, 즉 충만의 상태로 옮겨진다는 주장으로 영지주의를 간파하는 것은 이단성을 파악하는 좋은 안경이 된다.
저자에 따르면 영지주의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금욕주의를 추구한다. 14세기 동방정교회 그레고리 팔라마스는 거룩한 고요함, 즉 침묵의 영적 체험을 중시했다. 지금도 요가나 심신수양과 같은 프로그램이 기독교식으로 이름만 바꿔달고 신자들을 유혹한다. 둘째는 카리스마, 즉 은사다. 잘못된 방법으로 은사를 받으면 엘리트의식에 빠진다. 남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거나 계급적 사고를 가지면 위험하다. 셋째는 상상으로, 이단들은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다. 아전인수식으로 성경구절을 끌어다 쓰는 설교 역시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로마가톨릭주의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국교회의 타락상도 가감 없이 지적한다. 저자는 “로마 가톨릭은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지니지 않는다”고 분명히 못 박는다. 저자는 로마 가톨릭이 어용신학과 번영신학을 등장케 했고 창부(娼婦)정치를 비롯해 성직매매와 성직 세습, 성상·형상·화상 등의 미신 중시,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다고 꼬집었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정교유착과 미신적 성격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음을 희석시키는 설교, 청중을 하나님 앞이 아니라 사람 앞에 세우는 설교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며 목회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저자의 외침은 종교개혁을 다룬 ‘내가 여기 있나이다’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는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미는 개혁이 아니라 진리의 재발견이었다”며 “종교개혁은 이미 있는 진리를 다시 깨닫는 것, 다른 말로는 신학적 개종”이라고 말했다.
교회사는 메시지다. 진리의 메시지를 역사의 현장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라는 제목은 여기서 나왔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 여정의 완성된 ‘매뉴얼’을 청교도 신앙에서 찾았다. 청교도 신앙은 칼뱅주의를 이어받고 개혁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데 힘썼으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자라갔다. 그들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점검했다.
한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간절한 메시지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똑바로 서게 한다. “신앙 선배들이 살아갔던 숭고한 삶을 통해 용기를 가집시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을 두려워 맙시다. 소리치며 죽이라고 외치는 무리 앞에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 음성을 들읍시다. 길이 협착하더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갑시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