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23) 사단장 부임후 2년간 “예배당 청소는 내 몫…”
입력 2011-12-27 21:08
사단장 부임 후 첫 주일 환영예배가 진행 중이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중에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강대상 쪽을 비추는데 놀랍게도 먼지투성이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앉아 있는 긴 의자 구석에도 먼지가 쌓여 있었다. 솔직히 그 시간 이후부터는 은혜가 되지 않았다. 예배 후 나는 고민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전속부관과 공관에 있는 병사들과 함께 교회 청소를 했다. 그렇게 2년을 매주 빠짐없이 했다.
하나님의 축복은 넘쳤다. 2005년은 한 해에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 부대표창을 모두 받는 영광이 있었다. 참모들은 부대표창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즐거워했다. 군 교회를 지원해 주시는 향군종 목사님들의 은혜도 잊을 수가 없다. 자랑스러운 부하들과 10년 후 재회를 약속하고 타임캡슐을 묻은 뒤 사단을 떠났다. 5군단 부군단장을 마친 후에는 다시 3군사령부 참모장으로 보직되었다. 은혜가 넘치는 홍은해 목사님과 함께했던 3번째 선봉대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너무도 즐거웠다. 사령관이신 백군기 대장님의 인품도 훌륭하셨다.
하루는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군단장 인사 후보로 올라와서 몇 가지 질문 좀 하겠습니다.” 나는 군단장으로 나가는 줄 알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명단이 발표될 때 내 이름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누구에게 청탁을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탈락되었다는 소문이 뒤따랐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억울했다. “네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니 억울하냐? 그러면 네가 잘못하고도 비판받지 않은 일을 생각해 보아라.” 이런 음성이 들려와 위안이 됐다. 하나님께서 모함을 통해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이때 군단장을 나갔으면 2년 후 인사주기상 새로운 보직으로 연결될 수가 없었고 개정된 인사법에 의거, 전역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후 또 군단장 인사가 이뤄지는 시기가 되었는데도 이번에는 청와대에서 전화가 없었다. 군단장 명단을 발표하는 날,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목사님의 위로기도를 받고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된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는 앞으로 더 세월이 지난 후에 그 과정을 알게 될 터이지만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너무나 분명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군단장이 되었다. 군단장이 되어서는 교회 청소를 할 기회를 잡지 못한 대신 소망교회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데 일조했다.
2작전사령관이 되어서는 대구 인근의 교회에서 하나님 살아계심을 간증하곤 했다. 군선교연합회 김승렬 장로님과 이수교회를 담임하시는 신현진 목사님의 군선교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뜨거웠다.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개최한 민군성회의 열기는 지금 생각해도 은혜가 된다. 두 분께서는 군선교 관련 집회 때마다 나에게 격려사를 부탁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격려사가 아니라 감사의 인사로 제목을 바꿔서 말씀드리곤 했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대구를 되살리자는 생각으로 황교안 고등검사장, 김신길 장로 등과 함께 기독 CEO 조찬기도회도 만들었다.
나는 안수집사 16년 만에 장로가 되었다. 장로 안수를 결정하지 못한 큰 원인은 술 문제였다. 술과 신앙과 군생활의 삼각관계는 나에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한때 술을 잘 먹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장로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술 문제로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