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당신이 서있는 곳에 하나님을 높이라…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입력 2011-12-27 18:05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루이스 프람스마 지음/이상웅, 김상래 공역/복있는사람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다. 하나님을 닮는 거룩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품는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속물이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해 섬기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하나님을 위해 내 온몸을 불사르려는 열망에 들뜨지만, 돈 몇 푼을 위해서 하나님도 내팽개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다. 이것이 내 작품 ‘내 안의 야곱 DNA’(죠이출판부)에서 본 인간의 자화상이다. 그곳에서 나는 이중성이 어떻게 갈등을 빚고 마침내 화해를 이루는지를 추적해 보았다.

내가 보기에 아브라함 카이퍼도 이중적이다. 이중적 인간,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 카이퍼도 사람인 바, 당연히 이중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일반론으로 접근하면 망신당하기 쉽다. 그는 헤르만 바빙크, B. B. 워필드와 함께 세계 3대 칼뱅주의 신학자다. ‘제2의 칼뱅’이라고도 불린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문구로 그가 소개됐다. “카이퍼는 16세기 장 칼뱅과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20세기 C. S. 루이스에 비견될 만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점증하는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항해서 교회를 개혁하고 보존한 개혁교회 목사, 네덜란드 총리와 반혁명당 당수, 자유대학교 설립자이자 교수, 일간지와 주간지의 편집장, 평생 220여권의 저서를 남긴 저술가. 그야말로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평생 일구어낸 업적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이 모든 일을 탁월성을 유지하면서도 한 번에 해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양가의 감정을 오갔다. 우선, 나는 탄복했다. “오, 하나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군요!” 그러면서도 나는 탄식했다. “오, 하나님!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나는 어쩌란 말입니까!” 롤 모델이 부재한 시대,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회 안에 꼭꼭 숨지 않고 내 삶의 자리에서도, 내 하는 일을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왕이 되게 하려면,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고자 한다면, 카이퍼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카이퍼가 이중적이라고? 그렇다.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이중적이다. 저자인 루이스 프람스마는 카이퍼 당대의 화두는 프랑스 혁명과 그것이 초래한 지성의 혼란이었다고 지적한다. 카이퍼는 혁명의 정신인 근대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하여 교회와 사회의 참된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인식시키는 동력으로 사용했다.

칼뱅주의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는 일평생 일관되게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을 옹호했다. “인간 존재의 전 영역 중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은 곳은 단 한 치도 없다.” 그랬기에 교회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 교육, 언론 등의 영역에 과감한 실천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 화란 개혁주의자는 정통 칼뱅주의와 달리 정교 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강력히 옹호했다. 그가 설립한 대학의 이름도 자유대학이고, 미국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도 극찬한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견해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주권이 세계 곳곳에 골고루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정치, 경제, 종교, 교육, 가족, 예술 등 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했다. 하나의 통일성으로 모든 것을 아우르려는 획일주의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는 포스트모던하다. 국가교회에 저항하고 자유로운 교회를 옹호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개혁교회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동시에 변호했다.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 양쪽 모두를 성취하고 싶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카이퍼는 모두를 통합해 냈다. 세계의 양면성과 다양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 이면의 통일성을 간파했다. 그의 단 하나의 목적은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것,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가 가정과 학교, 교회와 사회에서 실현되는 것이고, 이 일에 자신의 전 생애를 전폭적으로 드렸다. 이 비전이 없었다면 그의 놀라운 사역과 업적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퍼에게서 배울 단 하나의 것을 고른다면 그리스도의 왕 되심에 대한 열렬한 확신과 대담한 실천이다.

나도 존 요더의 생애와 신학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저자가 어떻게 카이퍼를 요리하는지 퍽 궁금했다. 카이퍼의 키워드가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내는지, 그러면서도 그것이 내장한 모순과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내는지를 주목했다. 또한 카이퍼의 시대적 배경과 동시대의 풍경, 그리고 그의 내면세계와 일상생활을 적절한 문장으로 묘사하는지를 예의주시했다. 카이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와 목회를 했던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가히 일품이다.

역자인 이상웅 목사의 해설도 깔끔해서 본격적인 독서를 하기 전에 미리 읽어두면 좋다. 본시 해설은 자칫하면 날 것 그대로의 읽기를 방해하고 모종의 선입견을 심어주기 일쑤다. 해서, 독서무림의 고수들은 원전이나 텍스트를 직접 읽으라고 권한다. 해석이랍시고 쓴 것이 더 어려운 경우도 왕왕 있다. 한데, 역자는 일목요연하게 연대기 순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해설을 먼저 읽지 않았으면 나는 ‘카이퍼의 생애 어디쯤을 읽고 있는 거지’라며 조금 헤맸을 것이다.

이참에 우리네 삶이 더는 헤매지 않는 방향키가 될 만한 전기를 읽어보면 좋겠다. 본디 이 책은 출판사 ‘복 있는 사람’에서 펴내는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이다. 익히 알려진 ‘전능자의 그늘’에서부터 내가 꽤나 재미있게 읽었던 ‘디트리히 본회퍼’와 인도 선교사였던 스탠리 존스를 다룬 ‘순례자의 노래’, 레슬리 뉴비긴의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칼뱅주의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시대’도 빼먹지 말고 같이 읽었으면 싶다.

제임스 맥클랜던은 전기로 신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야 죽은 신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학이 될 테니까 말이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이야기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 고백이 헛되고 무익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증언한 하나님의 백성, 그분을 입으로만 왕이라고 떠들지 않고 말과 글, 몸과 삶으로 살아낸 하나님의 사람을 보라, 그의 이름은 아브라함 카이퍼이다.

글=김기현 목사(부산 로고스교회, ‘글 쓰는 그리스도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