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발전소 논란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르포] 풍요로운 갯벌과 바다, 가로림만이 뒤척인다

입력 2011-12-27 21:50


서해안 가로림만이 조력발전소 건설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단체는 갯벌 파괴를 이유로 조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한다. 가로림만은 이제 강화갯벌과 함께 우리나라에 둘밖에 남지 않은 대형 갯벌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지식경제부와 발전사업자들은 대규모 조력발전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자루를 쥔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보완을 세 번째 요구했다. 대안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가로림만 갯벌 현장을 살펴보고 어민들을 만났다.

가로림만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의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일대는 간조 때면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다. 지난 12일 찾은 겨울철 갯벌은 언뜻 보기에는 황량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게와 갯지렁이가 파고 들어간 구멍이 보인다. 썰물 때 바다로 가지 못한 망둥어 사체도 있었다. 나이 많은 어촌 할머니들은 추위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바지락과 굴을 캐는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풍요로운 갯벌=기자 일행은 감리교신학대 학생 20여명과 가로림만 갯벌을 방문했다. 일행을 안내한 이평주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상근의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칠게가 잔치를 벌이지만 지금은 갯지렁이와 게 구멍만 보인다”고 말했다. 농게, 콩게, 엽낭게도 갯벌 깊숙이 숨어서 살고 있다. 이들은 한때 철새에게 풍성한 식탁을 제공했다. 이 의장은 “가로림만 갯벌은 모래와 뻘의 혼합갯벌이어서 방조제로 입구를 막아버리면 모두 썩어버린다”고 말했다.

가로림만에는 멸종위기2급 야생동물인 잔점박이물범 9마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머무른다. 물범 서식지는 우리나라에서 백령도와 이곳뿐이다. 알락꼬리마도요, 청다리도요, 중부리도요, 검은머리물떼새 등 도요·물떼새류도 가로림만을 찾는 여름철새다.

이 의장은 가로림만 갯벌의 풍요로움과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발전사업자는 잔점박이물범이 없다고 강변하고, 민관합동조사에서 발견된 황새는 길 잃은 개체라고 억지를 부린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2007년 가로림만 갯벌의 환경가치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갯벌 가운데 1위라고 평가했다.

◇어민의 저금통장=갯벌 구석에 자리 잡은 환경부지정도서인 옥도 굴막에서는 아낙들이 굴을 까고 있었다. 굴막은 추위를 피해 굴 채취작업을 할 수 있도록 비닐을 씌워 만든 작업장이다. 오지리에 사는 이복순 할머니는 조새(굴까는 도구)질을 하면서 “나이 70, 80 먹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씨를 비롯한 마을 아낙과 할머니들은 물때에 맞춰 반나절만 작업하면 굴 7㎏은 거뜬히 캔다. 시가 9만여원. 이곳 어민들은 “갯벌은 (원금 까먹지 않고) 이자만으로 살아가게 해 주는 저금통장”이라고 자주 말한다.

가로림만을 둘러싼 서산시 대산읍, 팔봉면, 지곡면, 부석면과 태안군 이원면, 원북면의 어부들은 겨울에는 굴과 바지락을 캐고 숭어를 잡는다. 봄에는 작은 게인 능쟁이를, 여름과 가을에는 낙지를 잡는다. 꽃게와 소라는 배를 타고 나가 잡는다. 가로림만 남단에 있는 팔봉면의 일부 어부는 낙지잡이만으로도 연간 80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바지락을 한창 캘 때는 하루 작업에 80㎏까지 잡아 16만원을 번다.

동행한 감신대 학생들은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받았다고 했다. 종교철학과 4학년 이재길씨는 “이렇게 풍요로운 바다농장의 목을 조르는 어리석은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학과 1학년 김평강씨는 “재생에너지의 장점은 알고 있지만 조력발전의 폐해인 바다 생물과 어부의 생존권 위협이 이득보다 크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조력발전사업 개요와 쟁점=가로림조력발전 사업은 복주머니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내만(內灣)인 가로림만의 좁은 입구를 방조제로 이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로림만의 서북단인 태안군 이원면 내리에서 동북단인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벌말지구를 잇는 2053m의 방조제를 쌓을 계획이다.

사업시행자는 한국서부발전이다. 설비용량은 52만㎾(520㎿)로 세계 최대규모다. 최근 가동되기 시작한 시화조력발전이 25만㎾다. 그 전까지 세계 최대였던 프랑스 랑스 조력발전소가 24만㎾이므로 두 발전소의 2배 규모다. 총사업비는 1조22억원. 한국서부발전 측은 “가로림만이 호리병 모양으로 만 입구 2㎞만 연결해도 다른 조력발전에 비해 최대 저수면적 확보가 가능한 최적의 입지여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업타당성에 대한 상반된 평가다. 가로림만은 1980년 이후 조력발전 검토대상이었지만 2007년 12월 해양수산부 전문용역에서 환경비용을 포함하면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2009년 한국해양연구원이 현재의 사회·경제적 변동요인을 반영해 경제성을 재검토한 결과 비용대비 직접편익이 1.16으로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국서부발전은 밝혔다.

사업자 측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보완서는 방조제 부근에 해양종합관광단지가 개발되면 관광객이 연간 5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만내 수면의 정온화로 투명도가 증대돼 양식업 소득도 500여 억원이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어부들은 “방조제 안쪽에 늘 물을 채워야 하므로 갯벌이 변질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청정바다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타당성 평가에서 가로림만 조력댐이 완공되면 연간 생산 전력은 950GW로 태안 화력발전소의 연간 발전량의 2.7%, 서산시 전체 전력사용량의 40%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찬성하는 주민은 서산과 태안을 연결하는 방조제가 연육교 같은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관광어업의 경제적 이익이 생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서산=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