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온호, 러 어선 구조] 선원들 배 가라앉을까봐 유빙 위에서 생활하기도
입력 2011-12-26 21:58
“한국에 대한 기억이 좋았어요. 한국배가 온다고 해서 살았다 싶었죠.”
스파르타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알리프는 아라온호의 등장을 무척 반겼다. 26일 선상에서 만난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은 무척 수척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그는 스파르타호를 타기 직전까지 약 2년 정도 부산항을 드나드는 어선 ‘오리온’호를 타면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고 했다.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러시아 어선을 타고 남극까지 오게 됐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한국 배를 타고 싶단다. 알리프는 기자를 향해 “사랑해요” 등 짧지만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스파르타호 선원들은 지난 15일 충돌 사고 이후 아라온호가 도착할 때까지 10일 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스파르타호의 항해사 빅토르는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선원 절반은 얼음과 충돌한 직후 배에서 내려 유빙 위에서 생활했다. 배가 가라앉을까 우려해 고무보트를 유빙 위에 내린 뒤 고무보트에 천막을 쳐서 작은 임시 숙소를 만들어 생활했던 것.
스파르타호 선원들의 역할은 크게 선박 운항과 조업 부문으로 나뉜다. 선장, 기관장 등 배를 운영하는 이들은 러시아 사람들이고,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일명 메로)를 잡는 어부들은 대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추위에 익숙한 러시아 선원들은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였지만, 더운 나라에서 온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상대적으로 동요가 심했다.
이후 배가 기울긴 했지만 가라앉을 위험은 없다고 판단, 고무보트에서 생활했던 선원들이 고무보트 텐트보다 덜 추운 배로 돌아왔다. 이후 생활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물을 퍼내거나. 빅토르는 펌프로 정신없이 물을 퍼내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고 말했다.
한편 아라온호의 도착으로 당장의 생존은 보장됐지만 일부 선원들은 벌써부터 이후가 걱정이다. 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멜린은 급여가 제대로 지급될지 불안해했다. 스파르타호는 고기잡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점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현재 배에는 잡아둔 메로 물량이 거의 없다. 현재 위치에서 임시 조치를 하더라도 본격적인 조업을 하려면 조선소에서 제대로 된 수리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번 시즌 스파르타호의 수입은 없는 셈이다. 멜린은 “아직 급여를 어떻게 할지 들은 바 없다. 하지만 계약대로 잘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라온호(남극해)=김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