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흡족한 은혜, 원초적 축복
입력 2011-12-26 18:48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6세’에 보면, 주인공 헨리6세가 이런 독백을 하는 대사가 나온다. “나의 왕관은 머리에 있지 않고, 나의 가슴속에 있도다. 왕관의 장식품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보석이니 나의 왕관은 ‘만족’이라 불리는 관…도대체 이 세상 몇 명의 임금이 이 왕관을 써 보았을까?”
언젠가 한국인 중년의 중산층 2000여명을 무작위 추출하여 삶의 만족도를 조사한 통계를 본 적이 있다. 40세에서 55세까지 소위 사회의 안정된 계층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결과에 따른 삶의 만족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응답자의 17.5%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다. 나머지 82%가 넘는 숫자는 아직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만족’이란 이름의 왕관 찾는 순례의 길을 걷고 있다는 통계였다.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만족’이라고 불리는 이 왕관을 평생 찾아 헤매는 동물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왕관을 얻기 위해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때론 웃고 때론 울면서 주름살과 함께 무덤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찾고 구하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만족을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기준하여 찾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소유물, 내 손에 움켜잡을 수 있는 물건들, 권력·명예·사랑·지식 등 삶의 만족 척도를 눈에 보이는,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의 태도에 대한 성서의 답변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전도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인간이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것’으로는 최고의 정상에 올랐던 상징적 인물, 솔로몬의 작품이다. 솔로몬 왕은 노년에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보며 “헛되고 헛되다”고 탄식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고귀한 것과 고상한 지식까지도 소유했던 솔로몬 왕은 “모든 것이 헛될 뿐”이라고 전도서 안에서 40번씩이나 허무의 독백을 쏟아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무의 언어들을 통해 솔로몬이 호소하는 것은 허무주의의 전파가 아니라 하나님과 유리된, 인간 중심적 가치와 만족의 추구가 결국 ‘허무’로 끝나게 됨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탄식은 2011년을 며칠밖에 남겨놓지 않고 세월이란 허무의 강가에 앉아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라 생각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베스트 설교 가운데 하나인 산상수훈에 보면 들에 핀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의 만족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에 있지 않고, 하늘 창조주에 대한 믿음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수설교의 결론은 참다운 인간의 만족은 ‘사랑하며, 일하고, 놀이하는’ 인간으로 하나님의 ‘원초적 축복(original blessing)’을 인정하며 단순하고 기쁘게 살라는 뜻일 것이다.
긍정의 복음을 설파한 필(Norman Vincent Peale) 목사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하게 산다는 소문이 퍼진 발리(Bali)섬의 주민을 방문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섬 주민들은 네 가지 공통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삽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대답들은 모두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이다.
이 대답들은 우리도 역시 가지고 있는 것들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그렇게 살 수 있는 여건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행복의 섬인 발리를 주셨는데 우리는 엉뚱한 보물섬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보물섬을 찾느라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주신 ‘원초적 축복’에 다시금 눈을 떠보자!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존재의 용기인 만족함을 갖고 내 발로 일어서 이 땅을 당당히 살아가길 결단하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이 감사와 은총의 계절에 우리 모두에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시편 기자의 ‘흡족한 은혜’의 고백이 있길 고대해 본다.
(연세대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