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명희] 소통하랬더니 엄이도종?

입력 2011-12-26 18:07


교수신문은 얼마 전 올해의 한자성어로 ‘엄이도종(掩耳盜鐘)’을 꼽았다.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이 말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아보지만 결국은 소용없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진나라 범무자의 후손이 다스리던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 중 한 명이 종을 훔치려다 너무 커서 못 옮기게 되자 종을 깨서 가져가려 했다. 그러나 종을 치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이를 누가 들을까봐 자신의 귀를 막고 종을 깼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서울시장 선거 때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대통령 측근 비리 등 각종 사건과 정책 처리과정에서 현 정부의 ‘소통 부족과 독단적인 정책 강행’을 꼬집은 것이다. 10·26 서울시장 선거 참패 후 정부는 2040세대와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청와대는 조직개편을 통해 ‘세대공감 회의’를 신설하는가 하면 각 부처 장관들은 앞다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친구들과 연극을 관람하고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하는 등 바쁘다. 내년 총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정치권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에서 질 게 뻔한 여당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서로 자기가 ‘SNS 정당’의 적임자라며 새 야당 대표로 뽑아달라고 아우성이다. ‘안철수 열풍’이 왜 불고 있는지, 왜 현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되는지 진지한 분석이나 반성을 찾아보긴 힘들다. 소통하겠다면서 오히려 진실을 감추고 SNS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정부가 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해도 국민들은 안다. 디도스 사건은 일개 한나라당 의원의 9급 비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단독범행이라더니 양파 껍질 벗겨지듯 진실이 하나 둘씩 까발려지고 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경찰 발표가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다.

SNS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정치풍자로 폭풍인기를 끈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국회의원 출신 패널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감옥에 간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몇 년 전 인터넷 댓글이 논란이 되면서 사이버공간도 규제해야 한다고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한 것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구글 등 해외업체들의 반발을 샀던 인터넷 실명제는 해킹 등 개인정보유출로 부작용이 잇따르자 최근 포털업체들이 잇따라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포기하면서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힘들고 희망보다 절망이 큰 시대일수록 개그 프로그램이나 정치풍자가 인기를 끈다. 생활물가와 아이들 등록금, 사교육비는 계속 오르고 월급봉투는 얇아진 팍팍한 시대이다 보니 개그 프로를 보며 웃음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리라.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유언비어를 단순한 헛소문, 변란과 연계된 소문으로 구분하고 고을 수령들이 다르게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영조 때 이인좌의 난, 순조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언비어가 크게 일어났음을 예로 들며 변란과 연계된 소문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단순한 헛소문은 세금이 무겁고 관리들이 탐욕스럽고 포학해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 난리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퍼져나가는 만큼 들어도 못 들은 척 조용히 넘어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궁핍한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게 유언비어를 잠재우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MB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