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22) 포천 소년, 소위 임관 25년 만에 별을 따다

입력 2011-12-26 18:19


2001년도 장군 진급 예정자가 발표되었다. 그 속에 내 이름이 있었다. 포천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육군 소위가 된 지 25년 만에 대한민국 육군의 장군이 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장군 예정자 명단이 발표되던 날은 전투체육을 하는 수요일 오후라 나는 우리 인력획득과원들과 함께 육군본부 근처의 작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들려온 축하전화의 그 감격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나는 진급 예정자로서 51사단 작전 부사단장으로 부임했다. 아직 대령 계급장을 붙이고 있었지만 장군으로의 예우는 깍듯했다. 사단장 문영환 소장을 통해 사단장이란 어떤 일을 어떤 자세로 수행하는지를 똑똑히 보고 배웠다. 6개월 후에는 수도군단 참모장을 하게 됐다.

보직이 끝나갈 무렵 나는 국방부의 어느 한 직할 부대장을 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직책에 보직되면 다음 진급이 유리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 직책에 계신 분이 전방에서 함께 근무했던 선배라서 나를 후임자로 추천했고 그대로 확정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인사명령이 발표될 때는 다른 사람이 보직되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섭섭했으나, 3군 인사처장이라는 나의 새 보직도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직책이라서 위로가 됐다. 몇 개월 후 내가 가고 싶어 했던 국방부 직할대장이 전역을 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그 자리에 갈 뻔했던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너는 참 운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막으신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는 여러 번 고백하곤 했다.

2002년 여름은 수해가 심했다. 부대별로 모금을 해 언론사에 기탁했다. 나는 군사령부에서 모금한 돈을 기탁하기 위해 모 방송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굳이 생방송에 출연해 한마디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령관 누구누구 외 장병 일동이 모금을 했고 나는 이를 전달하러 온 누구라고 카드를 작성해 제출하고 인터뷰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저녁 정규 뉴스 후에 수해성금을 보낸 사람들 명단을 자막으로 방송할 때였다. ‘3군사령관 대장 이철휘 외 장병 일동 금일봉’ 그 자막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 내가 제출한 카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새 양식에 옮겨 적어 뉴스부로 넘긴 탓이라고 했다. 다음 날과 그 다음 날까지 자막 뉴스를 다시 내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사령관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야! 너 대장됐더라”라고 놀리는 눈치 없는 동료들 때문에 사령관께는 더욱 송구한 노릇이 됐다. 매스컴 타는 것은 가급적 멀리 하는 게 좋다는 선배들의 충고가 떠올랐다.

3군사령부 인사처장에서 수도방위를 담당하는 사단장이 됐다. 전방에서 소대장을 하는 아들 녀석이 특히 기뻐하며 전화를 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소대원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사단장 되셨다고 자랑했더니 장군 아들이 어떻게 전방에 오느냐, 친아버지가 맞느냐고 되묻는데요?” 우리 사회에 한때는 군에 가는 문제 등을 놓고 ‘신의 아들’ 운운한 적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잘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나의 친아들이 컴퓨터 무작위 분류에 의해 최전방에서 소대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좀 믿으려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