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최고의 한 해 보낸 소리꾼 이자람 “무대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해요”
입력 2011-12-25 14:26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되는 노래 ‘내 이름 예솔아’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자람(32)의 활약은 반갑고 뿌듯한 성장이기도 했다. 청량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는 어느덧 ‘국악계의 미래’라는 말을 듣는 소리꾼이 되었다. 그가 거둔 가시적인 성과는 또 어떤가. 브레히트 희곡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전으로 한 창작판소리 ‘억척가’는 국악 공연으로는 드물게 대형 극장에서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겼고, 뮤지컬 ‘서편제’에 출연해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2일 저녁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자람을 만났다. 국악은 물론 연극·뮤지컬·클래식 분야를 아울러 생각해보아도, 한 해를 결산하는 인터뷰 대상자로 이자람보다 적합한 사람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약속시간이 10분 정도 지났을 때에야 구둣발이 쿵쿵쿵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이자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재’라거나 ‘국악계의 모차르트’라는, 호들갑어린 별명 때문에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까. 괴팍하거나 고집스러울 것 같다는 예상이었는데 여지없이 깨졌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 혹은 스무살 초반의 대학생이라 해도 믿을 성싶은 동안으로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읊조렸다. 인터뷰를 시작하는 의례적인 질문으로, 그러나 사실은 정말 궁금하기도 해서, 2011년을 마치는 소감을 우선 물었다.
“내가 이런 걸 했었구나 싶다가도 일상에 다시 오면 그게 난가 싶고, 다시 할까 싶고 그렇네요. 또 ‘내년엔 큰일났네’ 하는 생각이 들고요. 무엇보다도 ‘내년엔 큰일났네’라고 생각하는 게 나인 것 같아요. 더 잘하려고 하지 않는 거요. 무대에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러더니 덧붙인다. “사실 제가 되게 소심하고 두려움도 많고 ‘쫄아 있는’ 사람이거든요. 다들 안 그렇게 보인다고는 하시는데….” 지난 6월 ‘억척가’ 공연 때는 어찌나 힘을 쏟았던지 마지막 무대를 마치고 쓰러지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다들 ‘안 그렇게 보인다’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 ‘억척가’에서의 이자람만 보더라도, 그는 가창과 1인 15역의 연기는 물론 문학적 능력이 요구되는 판소리 창작까지 도맡았다.
“(천재라는 등) 그런 칭찬이 잘 와 닿진 않아요. 저는 노력형 인간이거든요. 다만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긴 했었어요. 팔레스타인 전래동화집이나 천일야화 속 여러 가지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또 여러 가지 일에 흥미를 많이 느껴요. 그게 평생 잃고 싶지 않은 저다운 건데, 사람한테도 잘 빠지고 사회적인 현상들에도 금세 재미를 찾아내고요.”
이자람은 판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로 ‘동시대성’을 꼽은 적이 있다. 판소리라면 이미 잊혀진 전근대 시절 이야기인데 거기서 동시대성을 발견해내는 감각이 새삼스럽고도 신선했다. 구체적으로 묻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이 술술 나왔다.
“저와 (‘억척가’ ‘사천가’ 연출을 맡은) 남인우 연출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이 판소리의 동시대성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시원한 얘기를 들었을 때 통쾌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선 작가가 세종의 입을 통해 지금의 서민들을 안아주는 얘기를 하잖아요. 그게 바로 동시대성이에요. ‘춘향가’ ‘심청가’를 통해 당대의 서민들이 가부장과 사대부들을 꼬집고 풍자해낸 힘 말이지요. 제가 ‘사천가’나 ‘억척가’에 주목한 것도 여기에 담겨 있는 이야기가 진짜 우리의 판소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뜻밖에 “맛있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 사람하고 만나면 깊은 맛이 나고, 언젠지 모르게 중독되어 버린, 그래서 자꾸 먹으러 가고 싶은 평양냉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