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리베이트 받은 의사가 1600명이라니

입력 2011-12-25 18:21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의 의료적 윤리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언제 읽어봐도 명문이다. 의사뿐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뜻을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지만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선서는 적어도 우리나라 의료계에서는 휴지조각이 된 것 같다.

제약업체들로부터 개업자금 등 각종 명목으로 의약품 리베이트를 받아온 의사들이 어제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끈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에 올 하반기 적발된 리베이트 수수 의사만 1644명이다. 고소득 사회지도층인 의사들이 뒷돈을 받다 수사망에 걸렸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실망스럽다.

서민들보다 훨씬 여유롭게 살아가는 의사들의 윤리의식이 이처럼 낮아서야 우리 사회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 암울하기 그지없다. 리베이트를 받는 방법도 파렴치범 못지않다. 제약회사가 의뢰한 간단한 설문 조사에 답해주고 돈을 받아 외형상 리베이트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노골적으로 병원 창립기념품 구입비를 대납하도록 하거나 개업자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리베이트는 건강보험재정 부실화의 주범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근절해야할 사회악이다. 즉, 의사의 처방에 따라 환자가 복용할 약품이 선택되고 약값의 대부분은 바로 건강보험재정에서 지급된다.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회사는 이 비용을 약값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어 건강보험재정은 해가 갈수록 적자가 심해지는 구조다. 의사와 제약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국민들의 주머니만 털어가는 꼴이다.

물론 그늘진 곳에서 묵묵히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실천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리베이트는커녕 정해진 치료비도 받지 않고 무료 진료를 하는 의사들도 많다. 이번에 적발된 의사들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