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사람과 눈사람

입력 2011-12-25 18:26


뉴욕에 함박눈이 내렸다. 저녁 무렵에는 햇살이 살아나면서 서녘에 노을이 들기 시작했다. 바람에 눈이 세차게 쓸려 길을 헤치고 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비교적 눈이 낮게 깔린 스태튼 아일랜드의 사우스 비치로 차를 몰았다. 발자국 하나 없는 해변의 눈벌판은 분홍빛 노을에 물들어 낯선 외계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눈 위에 생긴 바람결의 무늬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직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은 자연의 순수를 즐기고 있는데, 문득 시선의 수평을 깨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보니 무엇인가 반짝이고 있었다. 뭘까? 무릎까지 빠지는 발자국을 따라 다가가 보니 눈사람이 서 있었다. 해변의 눈사람! 이곳을 향해 긴 발자국이 뻗어 있었고, 그 발자국은 외길밖에 없으니 같은 길을 따라 들어왔다가 나간 모양이었다.

눈사람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덩치가 있었다. 누군가 눈이 펑펑 쏟아질 때 바닷가에 나와 공들여 만들어 놓고는 노을이 내리자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눈사람 만든 사람이 눈 위에서 뒹굴면서 놀던 자리가 곳곳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신나게 즐기다가, 미련 없이 돌아간 흔적이 역력했다.

눈사람 하나는 컸고, 다른 하나는 좀 작았다. 둘 다 비뚤비뚤하고, 밸런스도 잘 잡히지 않아 우스꽝스러웠다. 묘한 해학미가 있어 저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자연스러웠다. 주위에는 눈을 모은 흔적들이 보였는데, 눈 위에 누워서 엔젤을 임프린트한 데는 한 곳뿐이었다. 눈사람은 둘인데 임프린트는 한 곳에서만 했으니 눈사람을 만든 사람은 혼자인가 둘이었나?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사람들은 왜 이리 눈사람 만들기를 즐길까? 다른 동물들, 가령 새나 짐승이 눈사람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기껏 필요에 의해 본능적으로 행동하다보니 눈사람을 만들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런 쓸데없는 일, 녹으면 그냥 사라져버리는, 그렇게 부질없는 눈사람을 열성스럽게, 더욱이 아주 재미있어 하면서 만드는 것인가? 생존의 필연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실제 생활에 별 이득도 없는 일에 흥미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념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동물과 다른 사람만의 문화적 본능 때문이라는 것이다. 짐승들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 기억력이나 감각이 뛰어난 것이 분명한데도 생존에 필요한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생존 본능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람이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문화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가장 자랑스럽고 뛰어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예술이 밥 먹여 주지 않는데, 그리고 빛나는 훈장으로 보상하지도 않는데, 목숨 거는 예술가들이 많은 것 또한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테레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