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종국] 러시아의 WTO 가입과 한·러 경협
입력 2011-12-25 18:24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러시아의 가입이 승인됨으로써 러시아는 1993년 가입 신청 이후 18년 만에 WTO 회원국의 꿈을 이루었다. 가입에 걸린 기간은 역대에서 가장 길며, 같은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일원인 중국의 14년에 비해서도 상당히 길다. 이로써 러시아는 세계경제의 틀을 정하는 G20 국가이자 G8 회원국 중 유일하게 WTO 미가입국이라는 딱지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시장 개방의 폭을 넓힌데 따른 우려감이 있지만 WTO 가입이 가져오는 이익은 매우 크다. 러시아가 시장경제로 전환한 지 20년이 됐지만, 러시아의 기업 환경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세계은행의 평가에 따르면 러시아의 기업 환경은 세계 120위이며, 국제투명성기구가 평가한 부패지수도 세계 143위에 이를 정도로 부패 제거의 과제를 안고 있다.
자원부국에 세계 10위 시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투자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WTO에 가입함으로써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경제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원군을 얻게 되었다. 또한 러시아가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신청하자 OECD는 WTO 가입을 전제조건으로 부과했는데, 이번 WTO 가입으로 OECD 가입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러시아의 WTO 가입으로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들이 얻게 될 이득도 많다. 우선 수입상품에 대한 평균관세율이 3% 정도 떨어져 러시아 진출을 원하는 외국기업들에 시장의 문턱이 더 낮아진다는 점이다. 또 2009년 국제금융위기 상황을 맞이한 가운데, G20 국가 중 가장 많은 수의 자국산업 보호조치를 취한 나라가 러시아이었듯이 지금까지는 관세인상 등 조치를 자유롭게 취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WTO 규정의 테두리 내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반덤핑 관세부과나, 이에 대한 외국의 이의제기도 WTO의 규범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므로 외국기업들도 좀더 공정한 대우를 받게 된다. 석유 가스 등 수출에 부과하는 수출세도 인하될 예정이어서 수입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올해 우리의 대러 교역 규모는 양국관계 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를 돌파할 예상이다. 러시아가 WTO 가입을 신청한 93년과 비교할 때 13배에 달하는 양적 성장이다. 또한 2000년 이후 9년간 7%에 달하는 고성장 결과 러시아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크게 향상된 점에 착안해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 대표기업들이 공장을 세워 러시아 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WTO 가입은 러시아에 투자한 우리 기업들에게 보다 투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기업 환경을 제공하는 이득을 가져올 것이다.
기업 진출 호기로 활용해야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중국의 고도성장 그늘에 가려 우리에게 시장의 잠재력이 과소평가된 경향이 있다.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1만3000달러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 10년 가까이 국제 자원가격이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어 러시아, 호주, 브라질과 같은 자원 보유국들의 구매력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GDP 규모가 세계 11위인 러시아는 향후 10년 이내 세계 5위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리에게 자원의 주요 공급처이자 10위권의 상품시장으로서 가치를 지녔다. 우리 기업들이 러시아의 WTO 가입을 시장진출 확대의 호기로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의 이정표를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종국 주러시아 경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