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북한과 아프리카

입력 2011-12-25 18:58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지정학적 리스크가 김정일의 사망으로 재부각되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나타났지만 북한 리스크는 곧 사라졌다. 그러나 향후 전개될 북한의 변화는 이전과 달리 체제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급한 예상일 수 있으나 북한이 급변하여 남북한 경제통합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북한의 체제 불안정은 대규모 난민의 발생과 군사적 도발을 불러올 수 있고 체제 붕괴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는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우리 경제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 경제발전을 촉진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흔히들 북한의 급변과 갑작스런 통일의 경우 참고해야 할 역사적 사례로 독일 통일의 경험을 든다. 물론 독일 통일과정에서 나타난 통일비용이나 통일방식의 문제 등은 우리가 참고해야 할 소중한 교훈이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원조와 함께 구조개혁을 추진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험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한 개혁과정에서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원조 조건으로 시장경제에 적합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80년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고 이런 상황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그 원인을 원조 조건으로 제시한 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제도적 뒷받침 없는 원조와 지원의 부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취약한 재산권과 관료주의를 불러오는 제도, 그리고 기존 정책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도시 엘리트 중심의 강력한 기득권 세력이었다. 재산권이 취약하고 관료주의가 팽배한 국가에서는 시장경제에 적합한 구조개혁 프로그램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 또한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은 구조개혁 프로그램의 집행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보츠와나처럼 재산권 보장이 잘 된 국가만이 예외적으로 높은 성장을 경험했고 90년대 이후 일당 독재체제에서 벗어나 기득권 세력의 영향력이 약해진 국가들부터 성장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북한의 경우도 급변 사태를 맞아 개혁·개방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도적 변화를 동반하지 않은 지원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10년간의 햇볕정책의 결과가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재산권 개념이 취약하고 일당독재의 통제사회인 북한에서 시장경제와 개방을 확대하는 정책들이 효과를 거두려면 지난한 정치적 변화와 제도개혁의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현 체제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군부와 당의 엘리트들은 개혁·개방에 강력히 저항하여 개혁 프로그램을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북한 체제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빨리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우리의 부담도 최소화하고 남북 공동번영의 기틀을 확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예에서 보듯이 현 체제와 기득권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개혁을 전제로 한 지원이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 대북정책은 개혁·개방의 기반이 되는 제도개혁이 가능하도록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만약 현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대북지원을 한다면 이는 우리 미래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게 될 것이다.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