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철휘 (21) 위기에도 계속된 새벽기도… 드디어 안수집사를
입력 2011-12-25 19:32
군 생활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지만 반대로 나의 신앙의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 당시 부대교회 홍순영 담임목사님은 나중에 군종감까지 지내신 훌륭한 분이다. 군목 세계에서는 강직하면서도 은혜가 풍성한 명설교가로 통한다. 그런데 그 분이 내가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니까 안수집사를 받으라고 권면하셨다. 그러나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믿음이 좋아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서 현 직책에서 잘 견디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으니 양심이 찔렸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은 못하고 목사님께는 “제가 아직 술을 끊지 못해서 안수집사를 받기는 부족합니다.”라고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다시 부목사님을 보내셔서 “술은 일단 안 먹는 것을 목표로 하되 지금은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안수집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렇게 해서 나는 안수집사 직분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내 삶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님께 한 발자국 더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장군이 되어 3번째로 보직되어 간 곳은 3군 인사처장이었다. 군 생활 중 나를 가장 어렵고 힘들게 했던 근무과장의 상관이 된 것이다. 7년 전, 아내는 나에게 다시 이곳으로 와서 남에게 베풀면서 군 생활을 하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현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께서 아내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 믿는다. 안수집사를 받은 후에 군산지역에서 연대장과 사단 참모장을 하였는데 향군종이신 조남인 목사님의 기도는 큰 힘이 되었다. 그 이후에 육군본부 군무원 담당과장으로 발령 받았다.
그때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3년 반이나 병원에서 고생하시다 소천하셨다. 어머니는 그 당시 대부분의 시골 아낙들이 그랬던 것처럼 절에 다니고 계셨다. 딱히 불심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어른들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불교 신자가 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대학에 가서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을 아시고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교회에 다니는 며느리감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으셨다. 따라서 나도 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는 것에 대하여 참견하지 않았다. 군 생활 때문에 떨어져 살다보니 그렇게 몇 십년을 지내왔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뇌수술을 하신 분들은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을 잃게 되면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깨어나지 않으면 운명하시는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나는 집 앞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목사님께 사정을 말씀드렸다.
어머님의 의식이 돌아오자 나는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설득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전도를 한 것이다. 어머님은 의외로 흔쾌히 세례를 받겠다고 동의하셨다. 할렐루야!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진작 건강하실 때 전도하지 못했을까 하고…. 세례를 받기로 한 날은 정작 내가 부대일로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아내가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모시고 가서 세례예식을 베풀었다. 어머님은 목사님의 말씀에 순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이셨다고 아내가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