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 북한 ‘남측 조문 모두 허용’ 카드 속셈은…조문파동 재연 부추겨 ‘南南 갈등’ 선동?
입력 2011-12-23 19:24
북한이 23일 느닷없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문을 희망하는 남측 단체의 방문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나왔다.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정부의 조문 허용 범위가 결정된 후 나온 북한의 조치는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측면이 강하다. 정부의 결정으로 수습국면으로 접어들던 보수와 진보 사이의 논란에 불을 지피려는 속셈이다.
정부는 무시전략으로 맞섰다. 최보선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조문과 관련된 입장을 밝혔다”며 “북한 주장에 어떤 대응도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대남선전 웹사이트를 통해 17년 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의 조문파동 재연을 노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국회에서 평양에 조문단 파견을 제의하면서 조문파동이 일었다. 김영삼 정부는 조문단 방북을 불허했고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 조문을 둘러싸고 갈등이 극심했다. 북은 이를 문제 삼아 남북관계가 상당 기간 얼어붙었다.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남조선 당국이 조문단 파견을 가로막고 조전·조의는 고사하고 애도의 뜻조차 표시하지 않은 것은 상식 이하의 불손하고 무례한 행위”라며 “남조선 통치집단의 대범죄를 단단히 결산할 것”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랬던 북한이 이번에도 정부가 민간차원의 조문을 불허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 야만행위”라며 17년 전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조문 허용 발표 후 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조문 확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에서 “북한이 성의 있는 조치를 발표했다”면서 “꼬인 남북관계를 푸는 발판이 될 수 있다”며 조문 확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외의 조문단 방북을 불허한다는 정부 방침엔 변화가 없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국회 특위에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 일행을 제외한 민간 조문단 파견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민간 조문단 파견 문제로 계속 논란을 이어가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또 미국 정부가 사실상 김정은 체제를 인정한 사실을 신속하게 북한 주민들에게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은 김 위원장 서거 이후 조선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며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김정은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됐으며 이와 관련해 현재 변화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도 김정은 체제를 인정했다는 점을 앞세워 북한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흥우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