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도가니’ 국내외서 빛난 작가의 힘… 2011년 문학계 결산

입력 2011-12-23 18:19


올 한 해 한국문학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괄목할만한 소출이 많지 않았다.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시장 진출에 힘입어 올해만 40만부 가까이 판매됐고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지난 9월 영화 개봉으로 사회적 신드롬까지 낳으며 40만부 이상 팔리긴 했다. 하지만 각각 2008년과 2009년 출간됐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올해의 성과로 보기 어렵다.

3, 4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장편소설 활성화로 많은 장편소설이 쏟아지긴 했으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늘어난 양만큼 미학적 쇄신을 했는지는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형을 모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인·소설가들 또한 적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 소설 분야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의 작가 김애란과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은 올해 한국소설계가 발견한 가능성 있는 인물이다. 김애란이 감각적 글 솜씨를 보인 ‘두근두근…’은 20만부 넘는 판매량을 과시했고, 정유정 작품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통 큰 서사와 흡입력 강한 스토리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꾸준히 머물렀다.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 영역본이 해외 진출의 새 장을 연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다. 이 작품은 ‘엄마’라는 우리말이 상정하는 보편적 정서가 ‘번역’이라는 난바다를 건너서도 얼마든지 전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황석영 김훈 최인호 최인석 이문열 최수철 등 중진 작가들이 잇따라 신작을 내며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 시 분야

시인 허수경 이영광 김이듬 심보선 등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허수경의 신작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은 모국어로 이루어지는 삶이 없거나 희박한 곳에서 모국어로 이루어진 시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이영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의 불행감과 슬픔과 분노를 거침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김이듬의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은 저돌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게으른 의식을 짓뭉개버리려는 비어와 속어를 능란하게 사용함으로써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었다. 심보선은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을 통해 지난 3년간 서울 용산을 시작으로 홍대 두리반, 85호 크레인 희망버스, 명동 제3개발구역 카페 마리 등으로 옮겨 다니며 문학과 정치에 대한 논의를 시적으로 축적하고 사회화하는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 작고 문인

원로 소설가 박완서씨가 담낭암으로 투병하다가 1월 22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문단은 물론 정치권, 종교계 등 각계에서 조문 행렬이 이어졌으며 소설과 에세이 등 고인이 남긴 작품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등 주요 잡지는 잇따라 관련 특집을 다뤘고 추모 문집도 발간되는 등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9월 28일엔 원로 시인인 김규동씨가 폐렴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지난 3월,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구술로 쓴 자전에세이 ‘나는 시인이다’를 펴내 주변을 감동시켰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