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극작가 아르토 내면속으로… 함정임 소설 ‘내 남자의 책’
입력 2011-12-23 18:19
‘잔혹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 극작가이자 시인인 앙토냉 아르토(1896∼1948). 세계 연극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1948년 파리의 한 요양원 침대 맡에서 한 짝의 구두를 손에 쥔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랜 기간 정신병에 시달려야 했다. 소설가 함정임(47·사진)의 신작 장편 ‘내 남자의 책’(문학에디션 뿔 펴냄)에 등장하는 책은 바로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라는 부제가 붙은 앙토냉 아르토의 책이다.
신문사 문화부 여기자인 주인공 임현준은 유럽행 항공기 안에서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잠든 옆자리 남자의 책을 훔친다. 책의 첫 오른쪽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18쪽)
그 문구를 읽은 현준의 마음속엔 이제는 세상에 없지만 정신 병력을 의심받았던 가수 출신의 아버지가 맴돈다. 이듬해 현준은 서울 광화문의 한 극장 앞에서 옆자리 남자 박동주와 우연히 알게 돼 만남을 이어가고, 아르토에 대한 동주의 열정에 이끌려 함께 아르토의 족적을 좇게 된다. 14세에 시를 발표한 천재였으나 19세 때 정신병으로 요양원에 장기 입원해야 했던 아르토. 아르토의 광기를 탐구해나가는 현준의 내면엔 언젠가 고모가 전해준 “(네 아버지) 인영은 미치지 않았어”라는 말이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과연 아버지는, 그리고 아르토는 미쳤던 것일까.
“아르토의 ‘사회가 타살시킨 사람 반 고흐’는 화가를 정신병자로 몰고 가는 무지한 사회, 병원, 의학, 기존의 가치 체계를 격한 감정으로 공격하는 글이다. 그것을 통해 그는 자신 역시 고흐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음을 항의하고 있다. 한 천재적 영혼의 타살, 그것은 사회가 자살로 몰아간 것이다.”(206쪽)
소설은 아르토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화와 연극, 회화, 문학작품을 끊임없이 등장시키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앙토냉 아르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나의 오랜 질문 속에서 만난 존재”라며 “조이스와 호머에게 ‘율리시스’가 있었다면, 이 소설에 관한 한, 나에게는 아르토가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실제로 아르토 연구자이기도 한 박형섭 부산대 교수와 2005년 결혼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