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함 빼고 생생함 담은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

입력 2011-12-23 18:05


사람 사는 이야기/최규석 등/휴머니스트

어느샌가 만화책은 사 보는 게 익숙지 않은 매체가 돼버렸다. 무료로 마음껏 볼 수 있는 웹툰이 인터넷에 천지고, 기껏해야 대여점에서 한 번 빌려 읽고 마는 게 만화 아니던가. 어린 시절부터의 선입견도 있다. 잊혀지기 쉽게 가벼운 게 만화책이라는 것.

그렇지만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다큐멘터리 만화 ‘사람 사는 이야기’는 이런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 번째 이야기부터 묵직한 펀치를 날린다. 최규석의 ‘24일 차’는 지난 10월 있었던 삼화고속 파업의 뒷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다섯 시간 걸리는 노선을 하루 네 번씩 달려야 하는 버스기사들, 새 조합장이 선출되면 억대의 돈을 들여 회유하는 사측, 파업과 동시에 아이 유치원 다니는 걸 끊어야 하는 노동자.

다큐멘터리 만화란 이런 것이로구나 할 만큼 생생하고 무겁다. 5만 원을 받고 용역 하청업체의 아르바이트로 고용돼 강제 철거 작업을 하게 된 백수의 심정을 다룬 ‘단돈 5만 원’, 유복한 여자친구와 등록금 대출에 허덕이는 남자친구를 그린 ‘빚내는 청춘’ 등 12편이 이어서 펼쳐진다.

독해에 들이는 시간에 비해 여운은 길고 강하다.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꼼꼼한 취재로 독자들의 공감대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말처럼, “다큐멘터리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라면 만화는 갈갈이 삼형제 같다”. 그만큼 다큐멘터리와 만화의 조합이 이질적이고 생경하게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투박한 그림체로 전달되는 아날로그 메시지가 여느 대중매체의 선동 못지않게 강력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사람 사는 이야기’는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들 역시 자신감이 넘친다. ‘눈앞의 북극곰 한 마리를 구하는 것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알려 더 많은 북극곰을 구할 수 있다’(‘나무 이야기’ 중)는 기백이 충만하다. 다만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많고 허를 찌르는 반전이나 쾌감 등 독자들이 만화에 대해 으레 기대하는 미덕을 찾기는 어려운 편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