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對北 시그널 남발할 때 아니다

입력 2011-12-23 18:04

김정일 사망 이후 안정적으로 위기관리를 해오던 정부가 갑자기 대북 유화적 발언을 쏟아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 아래 천안함 폭침 이후 내려진 5·24 대북제재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구체적 내용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고 발언했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일 사망으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책임자가 없어졌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움직임은 격랑 속에 놓인 동북아 안보환경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긴박한 움직임이 정부를 자극했을 수도 있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개혁·개방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작은 것을 접는 전략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제재는 김정일 사망으로 일단 매듭지어진 것이라는 논리가 있다.

문제는 우리 쪽이 너무 성급하게 나선다는 점이다. 현재 북한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위기상황에서 조직적인 내부 결속을 도모하면서 치밀한 권력승계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 유훈통치를 내세우면서 김정은 시대를 선언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김일성 사망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대남전용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는 어제 “남조선의 모든 조문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조문이) 앞으로 북남관계에 미칠 엄중한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제한적 조문 허용’이라는 우리 정부의 방침을 깔아뭉개면서 남남갈등을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 유감표명도 받지 않은 채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정세가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기존 전략을 급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지금은 북한의 기상천외한 3대 세습의 현실을 불가피하게 인정하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면서 동맹국과 함께 새 지도부의 대남 메시지를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