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맹경환] 카라얀과 정명훈
입력 2011-12-23 18:03
마에스트로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는 2차 대전 후 전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42년 히틀러의 생일기념 연주회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지휘하는 등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였다. 논란이 있지만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에 이용당한 측면이 크다. 오히려 나치 통치 속에서 나치의 부당한 예술 간섭에 맞선 것으로 유명하다. 유대인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가 나치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당했을 때 힌데미트를 옹호했다. 얼마 전 공개된 미발표 고백록에서 그는 “나치 정권이 내 음악 활동을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보다 적극적으로 나치에 가담한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33년 스물다섯 나이에 나치에 입당한다. 덕분에 1938년 그토록 바라던 베를린 필을 지휘할 기회도 얻었다. 그는 훗날 “지휘를 계속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그보다 더한 범죄라도 저질렀을 것”이라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아이작 스턴이나 이작 펄만 등 유대계 연주자들이 카라얀과의 연주를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과다 연봉’ 논란이 휩쓸고 지나갔다. 서울시의회 행정감사에서 민주당 소속 시의원이 시민 세금으로 연봉 20억원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한 연극연출가는 집요하게 정명훈을 공격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호불호를 떠나 인정되는 분위기지만 그래도 정명훈이 ‘과연 한 해 20억원을 받을 만한 세계적인 음악가인가’라는 의문은 당연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공격의 선봉에 선 연극연출가는 칼럼에서 푸르트뱅글러가 히틀러를 위해 ‘합창’을 지휘한 것과 정명훈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 ‘합창’의 마지막 악장 ‘환희의 송가’를 연주한 것을 연결시켰다.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정명훈을 나치(이명박 정권)에 부역한 인물로 만들었다. 결국 ‘이명박이 채용한 정명훈이니까 나는 싫다’라는 주장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예술의 문제는 예술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그냥 예술가들은 정치에서 벗어나 예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놔두자. 정명훈은 연봉을 조금 깎아 재계약을 하고 서울시향에 남기로 했다. 다행이다.
맹경환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