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문화 대통령·국민 MC 은퇴… 드라마같던 연예계
입력 2011-12-22 17:22
2011년 달군 방송가 스타 5명
만약 당신이 1년 전 이맘때 서태지가 ‘돌싱’이라고 주장했다면, 혹은 강호동이 은퇴를 선언한 뒤 방송계를 떠날 것으로 전망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은 당신에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2011년이 저물어가는 현재, 모두가 알다시피 이들 사례는 전부 엄연한 사실이 됐다.
두 톱스타 외에도 배우 한예슬은 올해 드라마를 찍다 돌연 잠적하는 전무후무한 ‘사고’를 쳤다. 임재범 등 수많은 실력파 가수들은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인생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우후죽순 생겨난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크게 화제를 모았다. 참가자들 인생 스토리는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어서 많은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2011년 방송가는 훗날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했던 해로 기억될 듯하다. 올해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스타 5명을 통해 2011년 방송가를 되돌아봤다.
①서태지
서태지는 ‘환상 속의 그대’였다. 1992년 데뷔해 ‘음반 발매→활동→잠적’을 반복하며 ‘문화 대통령’으로 군림한 가수. 하지만 사생활은 언제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인물.
그런 만큼 4월 21일 전해진 소식은 쇼킹 그 자체였다. 97년 미국에서 비밀리에 결혼, 2006년 이혼, 상대는 배우 이지아, 이지아는 서태지에게 50억원대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 제기…. 그의 은밀한 사생활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고 대한민국 전체는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였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씨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해온 서태지의 행적, ‘외계인’으로 통할 만큼 묘연했던 이지아의 과거가 서로 퍼즐처럼 맞춰졌죠. 한마디로 할리우드 영화 같았어요. 게다가 이지아는 톱배우 정우성과 교제 중이었으니….”
하지만 메가톤급 파문에도 ‘서태지 팬덤’은 굳건했다. 팬들은 내년 데뷔 20주년을 맞는 그가 들고 올 선물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서태지가 지난 8월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에 적은 마지막 문구는 이랬다.
“나로 인해 다친 마음 모두 아물 수 있도록 처음부터 하나씩 내가 다시 노력할게. 미안하고 고맙다. 8월 1일 태지.”
②강호동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뻔뻔하게 TV에 나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 수 있겠습니까.”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9월 9일, 강호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유재석과 함께 예능계를 양분해온, 지상파 3사 연예대상만 다섯 차례 수상한 1인자의 퇴장이었다.
‘국민 MC’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세금 문제였다. 세금을 덜 내려고 소득을 축소 신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터넷에선 ‘강호동 퇴출 서명운동’까지 벌어졌고, 결국 강호동은 고의성 여부를 떠나 마이크를 놓기로 했다. 마치 92년 씨름무대에서 전격 은퇴하던 그때 그 모습처럼 말이다.
당연히 방송국들은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계 관계자들은 그가 차지한 위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절감해야 했다.
은퇴 선언이 있은 지 3개월이 넘게 흐른 현재도 마찬가지다. 강호동은 여전히 뉴스메이커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가 하면, 죽을 쑤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이 그에게 거액을 베팅할 것이란 루머까지 공공연하게 나돈다. ‘왕의 귀환’은 언제쯤 어떤 모습으로 이뤄지게 될까.
③임재범
MBC ‘나는 가수다(나가수)’가 방송되기 전,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가수 7명이 노래 대결을 펼쳐 꼴찌는 퇴출된다? 즉, 꼴등한 가수는 치명상을 입는 프로그램이라는 건데, 과연 나가수는 ‘론칭’이나 할 수 있을까. 나가수는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던 기획 상품이었다.
그런데 3월 6일 첫 방송을 앞두고 공개된 라인업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김건모 이소라 YB 김범수 박정현 백지영 정엽 등. 명성에 걸맞은 감동의 무대가 시작됐다. 대중문화계 전반엔 태풍이 몰아쳤다. ‘나가수 음원’은 차트를 휩쓸었다. 출연 가수들 콘서트는 공연계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나가수에서 최고는 단연 임재범이었다. 맹장수술로 중도하차하기까지 그가 무대에 선 건 고작 3번. 하지만 빼어난 가창력에 기구한 개인사까지 포개지면서 그의 무대는 큰 울림을 선사했다. ‘노래의 힘’이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지 임재범은 증명해냈다.
슈퍼스타로 거듭난 그의 공연은 한때 암표 가격이 100만원을 호가한다는 루머가 돌 만큼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그는 최근 리메이크 음반 발매를 기념해 기자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원대한 목표를 밝혔다. 앞으로 3∼5년 안에 세계적 권위의 음악상 그래미상을 거머쥐겠다는 것이다.
④한예슬
용감했던 걸까, 아니면 철이 없었던 걸까. ‘한예슬 파문’은 아직도 답이 안 나오는 희대의 해프닝으로 기억된다. 평소 고강도 스케줄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배우 한예슬. 8월 15일 그는 주인공으로 출연 중이던 KBS 월화극 ‘스파이명월’ 촬영을 펑크 내고 돌연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가버렸다.
아름다운 여배우의 터프한 행보에 방송가는 발칵 뒤집혔다. KBS 드라마국 간부들은 다음날인 1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분위기가 ‘한예슬 성토대회’를 방불케 했다. “광고 촬영 있다고 해서 시간도 빼주고, ‘몸 개그’는 싫다고 해 대본도 수정해줬다” “국민과의 약속인 방송을 펑크 내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다”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파문은 한예슬이 그 다음날 귀국해 촬영장에 복귀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했지만 옹호론도 만만찮았다. ‘생방송’을 방불케 하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한예슬 파문’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귀국 당시 인천국제공항에서 한예슬은 이 같이 말했다.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어요. 저희의 (드라마 제작)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국민들이 이제 아셨을 거예요. 저 같은 희생자가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⑤임윤택
가히 오디션 열풍이었다. 지난해 ‘허각 신드롬’을 만들어낸 ‘슈퍼스타K2’ 영향이 컸다. 가수 오디션은 물론이고 밴드, 연기자, 모델, DJ 등 각양각색의 오디션이 펼쳐졌다.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유행을 좇는 방송가 모습은 씁쓸했지만, 많아진 오디션이 그만큼의 숱한 화제를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는 옌볜(延邊) 총각 백청강이 ‘코리언 드림’을 일궈냈고, KBS 2TV ‘톱밴드’는 낮은 시청률에도 밴드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오디션 원조인 ‘슈퍼스타K3’였다. 200만명에 육박한 지원자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한 팀은 4인조 그룹 울랄라세션. 특히 팀의 리더인 임윤택은 위암 말기로 투병하는 상황에서 동생들과 함께 매주 완벽하고 감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보는 이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11월 11일, 관객 1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임윤택이 밝힌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15년 동안 못난 리더를 따라온 동생들을 위해 나왔습니다. 팀이라는 건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걸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겁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