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경제雜說] 김정일 사망의 경제학
입력 2011-12-22 18:05
1차 세계대전에서 서로 적국의 왕이었던 영국의 조지 5세와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실은 외사촌 간이었다. 빌헬름은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구축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스튜어트 왕가의 마지막 국왕인 앤 여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영국은 제임스 1세의 외증손자인 독일 하노버 가문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공작을 왕으로 모셔온다. 이 사람이 바로 하노버 왕가를 연 조지 1세다. 지금의 윈저 왕가는 하노버 왕가가 이름만 바꾼 것이다. 영국의 국왕이 되기는 했으나 독일에서 태어나 영어라고는 한 마디도 몰랐던 조지 1세는 거의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대부분의 정무를 신하들에게 맡겨 버렸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입헌군주제의 기본 원칙도 실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런데 조지 1세가 영국 왕으로 옹립된 것은 신교도만이 왕이 될 수 있다고 규정한 ‘왕위계승법’ 덕분이었다. 조지보다 서열은 빨랐지만 구교도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에서 밀린 사람이 있었는데, 제임스 1세의 손자인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억울하게 왕이 되지 못한 찰스는 스코틀랜드군을 이끌고 잉글랜드를 공격해 파죽지세로 런던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이제 마지막 공격 한 번이면 조지는 패하고 찰스가 왕이 될 순간이 임박했다. 그런데 런던 함락을 한발 앞에 두고 스코틀랜드군은 갑자기 포위를 풀고 철수해 버린다. 잉글랜드군은 철수하는 스코틀랜드군을 뒤에서 공격해 대승을 거둔다. 스코틀랜드군은 왜 갑자기 전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을까. 추수철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대부분 농민이었다.
상비군이 없었던 근대 이전의 군대는 용병이 아니면 농민들로 구성되었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히 농민들보다 직업군인이라 할 용병들이 훨씬 잘 싸웠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용병들이야 돈 받고 싸우는 처지니 적당히 싸워주면 그만이지만, 농민들은 전쟁에서 지면 가족과 토지를 모두 잃게 되니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쟁이 길어질 경우다. 봄의 파종기를 놓치거나 가을의 추수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농민들은 꼼짝없이 굶주려야 했다. 심지어는 그 때문에 왕이 바뀌거나 나라가 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경제학적으로 비유하자면 전쟁의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비용과 편익의 분석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학자들은 무엇이든 비용과 편익으로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가령 남북관계도 그렇다. 경제학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거나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식으로 남북관계를 보지 않는다. 남북 화해의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면 합리적인 선택이고, 남북 긴장의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면 비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경제학의 사고방식이다. 지난달에는 연평도 포격 1주년 추모식이 있었다. 군과 국방부는 북한이 다시 도발해 온다면 그 몇 배로 응징하겠다고 결의에 찬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과 능력이 있다면 왜 1년 전에는 아무런 대비도 못하고 아무런 대응도 못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국방부와 군이 결의를 보이는 것은 좋다. 그런데 정말 북한이 도발하고, 그래서 우리 군이 대응하고, 연평도를 넘어 서울과 평양이 불바다가 된다면 과연 그것은 좋은 일일까? 적의 도발을 결연히 물리쳤다는 편익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비용보다 더 큰가 말이다. 결의는 그런 사태를 막자고 하는 것이지 그런 사태를 반기자고 하는 것은 아닐 터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부터 연평도 사건까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다. 정부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해 북한이 먼저 사죄하기 전에는 남북관계의 개선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지금의 남북관계는 편익보다 비용이 크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중소기업들은 매일매일 부도의 위기 앞에서 숨도 못 쉬고 있다. 심지어 한 입주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조차 있었다. 외국 투자자들은 우리나라의 위험도(country risk)를 이리저리 계산하면서 투자에 주저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아예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니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지금 남북 간에 조성된 대립과 갈등은 우리가 먼저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비상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일선의 장병들은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남북 분단과 긴장의 가장 큰 비용은 학업에 매진하든 경제활동을 하든간에 가장 생산성이 높을 나이의 청년들이 가장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것도 모자랐던지 얼마 전 국방부는 예비군들이 현역 시절에 복무했던 부대에서 훈련을 받도록 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보류하겠다고 물러섰다. 국방부는 이전에도 사격 성적이 좋은 예비군들을 선발해 저격수 부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박지성이 은퇴한다니까 조기축구회 선수들을 모아 월드컵에 나가겠다는 것이나 똑같은 이야기다.
좋든 싫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비용은 줄이고 편익은 늘리는 지혜로운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해 본다. 남북 간의 긴장을 핑계로 예비군들을 어쩌겠다는 황당한 발상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그런 긴장을 어떻게 풀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옳다.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