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죽음에 따라붙는 이야기
입력 2011-12-21 17:55
일세를 풍미한 큰 인물이나 영웅, 또는 독재자를 포함한 최고권력자들의 죽음에는 항용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떠나보내기가 너무 아쉬워서일 수도 있고, 죽은 자의 족적 또는 악행이 너무 커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어떤 죽음은 미스터리 그 자체가 된다.
이순신 장군의 죽음만 해도 그렇다.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용전분투하다 왜군의 총탄에 맞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전사했다는 게 공식적인 최후의 모습이지만 자살설도 만만치 않다. ‘용렬한 임금 선조와 조정 내 반대파의 시기에 못 이겨 나중에 화를 입을 것을 미리 알고’ 의도적으로 갑옷을 벗고 전투에 나서서 적의 총탄에 몸을 맡겼다는 주장이다. 영웅에 대한 추모의 염(念)과 무능한 조선 조정에 대한 반발이 자살설로 나타난 셈.
그런가 하면 히틀러와 스탈린은 어떤가. 히틀러는 베를린 함락을 앞두고 지하 벙커에서 권총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은 눈가림이었을 뿐 살아남았다는 설이 파다했다. 사체가 소각돼 시신 확인을 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 그러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죽음마저 믿지 못하게 했을지 모른다.
또 1953년 심복인 비밀경찰 책임자 베리야를 포함한 정치국원 4명과 함께 식사하고 쓰러진 뒤 나흘 만에 사망한 스탈린의 공식 사인은 뇌일혈이었다. 그러나 베리야가 독살했다는 암살설이 최근까지 꾸준히 나돌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1세가 1978년 재위 34일 만에 사망했을 때도 암살설이 나왔지만 그것이 교황의 급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의 표시였다면 스탈린 독살설은 그의 끔찍한 악행에 비추어 자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곧 인과응보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죽음을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타살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북한이 발표한 사망 시점과 장소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 원장의 경우 대북 정보력 부재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물타기’ 아니냐는 지적도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북한 발표대로라고 해도 사망한 지 이틀이 훨씬 지나서야 사망 소식을 공표하는가 하면 워낙 숨기고 조작하기를 밥 먹듯 하는 북한의 속성상 공식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최고지도자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미스터리에 싸여 뒷말이 나오게 만드는 북한이 딱하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