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젊은이에게 결혼을 許하라

입력 2011-12-21 17:54


마흔둘이면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할 나이인데 그는 혼자다. 늦게 결혼을 했던 친구들조차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두고 있는데 여전히 미혼이다. 먹고살기 바빠 그랬다고 말하면 다들 믿지 않는다.

진짜 먹고살기가 바빴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 손에서 컸다. 대학을 마친 뒤에는 정신없이 달렸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지만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돈이 모일 만하면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가진 것이 없다 보니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엄두를 못 냈다. 20대에 1년 남짓 만났던 사람이 그의 연애경력 전부다.

요즘 그는 다시 결혼을 고민하고 있다. 거창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애국(愛國)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결혼정보 업체에 등록을 하고 맞선자리에 나가도 늘 퇴짜를 맞는다. 상대방을 탓할 수도 없다. 결혼부터 출산, 육아까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 배우자를 고를 때 경제적 능력이 첫 손가락에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외국인 배우자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고민도 한다.

얼마 전 만난 친구는 긴 시간 신세 한탄을 했다. 결혼을 못 하는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사람과 세상이 밉다고도 했다.

그의 사례가 아니라도 만혼(晩婚) 혹은 비혼(非婚)의 흐름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혼 연령은 남자가 31.84세, 여자가 28.91세다. 10년 전(2000년)과 비교하면 남자는 2.56세, 여자는 2.42세 늘었다. 20년 전(1990년)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명확하다. 남자는 4.05세, 여자는 4.13세 상승했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늦게 하는 현상은 저출산을 더 심화시킨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은 90년 1.52명에서 2000년 1.46명, 지난해 1.23명으로 뚝 떨어졌다. 세계 222개국 가운데 217위다.

결혼은 아직까지 개인의 선택이나 능력으로 치부된다. 그래서인지 만혼·비혼이라는 단어에는 ‘자발적’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들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취업에 성공한 여성은 경력 단절과 육아부담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최대한 늦추는 ‘비만(비혼 또는 만혼) 세대’가 되고 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웃나라 일본의 ‘초식남(草食男·이성에 관심이 없고 여성에게 말도 못 붙이는 남성)’ 급증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다.

여러 연구기관은 저출산 원인의 하나로 비혼과 만혼 증가를 지목한다. 이 추세가 되돌려지기 힘들다고 예측한다. 일자리 문제, 주거 문제, 양육비·사교육비 문제가 한데 얽혀서다. 7%에 육박하는 청년실업률은 첫발을 내딛지도 못하게 만든다. 전세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결혼은 모험이다. 엄청난 양육비와 사교육비는 출산을 ‘인생의 무덤’으로 전락시킨다. 상황이 이 정도면 비혼·만혼은 더 이상 개인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세워 물길을 돌리려 애쓰고 있지만 대책은 보육이나 복지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결혼으로 가는 관문이 봉쇄되는 현실에서 ‘출산 이후’에 집중하는 건 생뚱맞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청년들에게 ‘미래’를 줘야 한다. 미래가 없는 경제, 미래가 없는 국가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