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김정일 때와 비교해보니… 당·군·정 핵심 대동하고 시신 앞 등장 ‘판박이’
입력 2011-12-21 18:04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군·정의 고위간부들을 대동하고 금수산기념궁전에 마련된 김일성 시신 앞에서 추도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김 위원장이 군부를 비롯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이다.
지난 20일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김 위원장 조문 모습도 똑같았다. 10여명의 권력 핵심과 김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장면은 북한의 모든 방송을 통해 대내외에 전해졌다.
김정은이 통치권을 확립해 가는 방식은 할아버지 사망 후 아버지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 갈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형식은 물론이고 발표문 내용마저 당시와 흡사하다.
김 위원장은 김 주석 사후 3년여를 선군정치, 유훈통치, 폐쇄주의 등의 방법으로 이끌어 갔다. 그는 97년 10월 당 총비서가 되기까지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북한을 통치했다. 군대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군정책 노선은 김 주석 사후 북한의 혼란을 수습하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김 주석 사후 김 위원장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체제 생존’이었다.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던 상황이었다. 날로 악화되는 경제난을 수습하고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사우선주의 노선을 버리고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 옳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반대 방향으로 나갔다. 국가안전보위부의 비밀경찰, 그리고 군대를 중심으로 체제 단속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김 위원장은 또 “우리는 계속 김일성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유훈통치를 했다. 3년상(喪) 기간에 그는 김일성의 유훈을 내세워 공식적인 통치자가 없는 통치를 했다. 외국 귀빈을 만나지 않고 대외활동에도 거의 나서지 않았다. 안으로 문을 굳게 잠근 채 내부에서 권력 장악에 힘쓴 것이다. 김 주석 사망 당시 김 위원장의 권력기반은 확고부동했으며 오히려 아버지를 넘어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