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깜깜이에 미확인 정보 흘려” 원세훈 원장 경질론 비등
입력 2011-12-21 21:52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을 경질하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북한 최대의 사건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데다 20일 국회에선 사망 정황에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게다가 21일 북한이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전 ‘김정은 대장 명령 1호’를 전군에 하달해 훈련 중지 등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원 원장 경질 여론에 불을 질렀다. 김정은이 북한군을 장악했음을 말해주는 중요한 정보인데도 국정원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서다.
한나라당 소속 권영세 국회 정보위원장은 공개적으로 “국정원장은 대통령과의 친소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전문성을 기준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북 정보력 부재의 원인으로 ‘낙하산 인사’를 지목한 것이다. 원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권 위원장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연평도 피격 때 미숙하고 답답했던 정보기관 모습이 나아진 게 없다”며 “당장은 아니라도 (상황이) 정리되면 (경질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도 “국회에선 국정원을 ‘동네 정보원’ ‘숙박원’이라 비꼬고 있다”며 “정보 비전문가가 국정원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정원장 아래 차장 세 명이 외교관 출신, 총리실 출신, 군 출신이다. 정보 베테랑들이 상층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비전문가들이 정치적 시각으로 정보를 다루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민주통합당 간사인 강기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예산은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5000억원, 예비비 3000억원에다 곳곳에 숨은 예산까지 포함하면 1조원에 이른다”며 “한심한 정보력에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사업과 예산을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원 원장이 국회에서 김 위원장 사망 일시와 장소에 의문을 제기한 데 대해 “정보사항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며 뒤늦은 정보가 불확실한 상태로 노출된 점을 꼬집었다.
이 같은 원 원장 경질 요구를 이 대통령이 수용할지 주목된다. 2년10개월째 ‘장수’하고 있는 원 원장을 교체한다면 김 위원장 장례 절차가 끝나고 상황이 안정되는 내년 초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보 수요가 높아지는 시점에 국정원장을 교체하기가 쉽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