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새 생활의 법칙
입력 2011-12-21 17:37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어느 유대교의 랍비가 한 남자에게 물었다. “만일 자네 아내가 벙어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입을 열게 되었다면, 이런 기적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나이의 답변은 “랍비님, 그런 기적은 별로 기적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집사람이 별안간 벙어리가 되었다면, 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가 말을 안 한다는 것은 기적 중에도 가장 큰 기적에 속할 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인간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중에도 남의 말 하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남의 말 하기(Gossiping)’는 인류 보편적 취미활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남이 잘못된 일, 실수한 일에 대해서는 더욱 흥미진진하게 말하고 듣기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다.
미국의 원주민인 ‘Sioux(수족)’ 인디언들은 이런 기도를 어려서부터 배운다고 한다. “우주의 신이시여, 내가 두 주간 동안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절대로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참으로 뜻이 있는 기도라 생각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인디언의 기도부터 배워야 할 때가 있음을 느낀다. 심리학자들은 3살 이전에 이미 기본 성격이 형성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거나 어머니의 모유가 부족했을 때 구강기의 성격장애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남을 의심하고, 남을 비난하기 좋아하고, 수다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성격, 끝없이 의존하면서 보채는 성격, 끝없이 입으로 재잘거리거나 입에 무언가가 물려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흔히 ‘구강기 성격장애자’라 말한다.
얼마 전 재미있는 연구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교회 교인들과 한국인들의 성격 속에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구강기 성격장애의 교인들’, ‘구강기 성격장애의 한국인들’이라는 것이다. 대동아전쟁을 거치고, 6·25를 거치고, 보릿고개를 거치며 배고픈 시절에 유아기를 보낸 사람이 많아서 성인이 되고, 잘살게 되고, 기독교인이 되었어도 끝없이 입으로만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 교회에서 서로 흉보고, 다른 종파 다른 믿음을 이단삼단이다 정죄하고, 집 안과 밖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불화하고…. 이 모든 성격들이 바로 구강기 성격장애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남을 비판하는 혀는 “배를 삼키는 물”과 같고, “온 세상을 태워 지옥으로 만드는 무서운 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피차에 큰 원수가 되게 하기도 한다. 독일의 베벤하우센이라는 오래된 수도원에는 두 마리 사슴이 서로 싸우다 결국 뿔이 엉켜 풀지 못하고 그대로 죽은 것을 보관해 둔 것이 있다고 한다. 안내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두 뿔을 모든 가정, 학교, 사회 그리고 교회에 가져가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한단다. “피차 물고 뜯으면 다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울의 말은 역시 불변의 진리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또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속단을 하거나 비판을 하거나, 내 멋대로 판단하는 ‘성급한 혀’를 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혀의 성화와 함께 바울이 지적하는 새 생활의 법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너그럽게 따뜻하게”의 원칙이다. 냉랭한 가슴을 성화시키는 단어, “너그럽게 따뜻하게!”를 하루 세 번, 미운 사람, 억울한 일 생각날 때, 분노와 증오심이 가슴에 끓어오를 때 이 단어를 반복해 보면 우리 마음속 독기를 사라지게 만드는 해독제 역할을 하는 매직 같은 단어이기도 하다. “너그럽게 따뜻하게”―얼마나 좋은 단어인가. 그러나 또한 우리가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단어인가. 볼테르란 철학자는 “세상의 모든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의심할 것 없이 관용을 가장 열심히 가르친 종교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관용을 모르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전 로마의 옥에 갇힌 사도 바울 선생님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오늘 우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신다. “여러분은 서로 너그럽게 따뜻하게 대해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정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