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교회-전남 광양 대광교회] 물처럼… 향기처럼… 교회, 지역사회에 스며들다

입력 2011-12-21 17:44


‘물(아쿠아·Aqua)이 되고 향기(아로마·Aroma) 되어 사랑(사랑·Agape)으로….’ 물처럼 소중하고 향기처럼 아름다운 것이 되어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겠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전남 광양의 대광교회가 내건 슬로건이다. 광양은 제철소로 상징되는 도시라 삭막할 것 같지만 의외로 운치 있는 도시다. 섬진강 하구의 광양만을 끼고 있는 도시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대광교회는 새로운 개념의 교회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서울에서 광양으로 가기 위해선 고속도로를 몇 번 바꿔 타야 한다. 경부고속도로로 가다 천안-논산고속도로로 바꿔 탄 다음 호남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순천-완주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를 차례로 타고 가다 동광양IC로 나가면 된다. 예전에는 통영-대전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했지만 순천-완주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소요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다.

대광교회는 동광양IC에서 컨테이너부두 사거리 쪽으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다. 넓고 잘 정비된 도로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여느 도시와 좀 달라 보인다. 교회 인근에 광양청소년문화센터, 광양YMCA가 보인다.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번지는 날, 대광교회를 찾았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음에도 아직 가을인가 싶을 정도로 화창하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교회당은 날씨만큼이나 따사로운 느낌을 준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 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교회는 소도시의 여느 교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교회당 안도 마찬가지다. 평이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다. 2층과 3층의 본당 안을 들여다보니 많은 여성 교인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여전도회 총회가 열리는 중이란다. 방해가 될까봐 서둘러 나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기도 소리란다. “우리 교회에는 종일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아요. 릴레이로 중보기도를 하고 있답니다.” 그렇지.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지….

교회당을 나와 뒤쪽으로 향하는데 이게 뭔가? 놀이동산에서 본 듯한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에는 사무실이 있는 아로마센터와 아가페센터, 아름다운가게, 아로마요양원 푯말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쿠아 카페, 엄마랑아기학교, 어린이집, 소극장, 교육원 등으로 표시돼 있다. 실제로 좁다란 길을 따라 커다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아쿠아센터 위에 만들어진 커다란 배의 형상이 이색적이다. 구원의 방주를 형상화한 것이다.

놀랍다. 아니 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웬만한 복지센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규모다. 이게 다 교회와 연관된다는 말인가?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운영하는 시설들입니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김병곤 목사가 넌지시 일러준다. 교회가 추구하는 ‘물(아쿠아)이 되고 향기(아로마) 되어 사랑(사랑)으로’의 현장인 것이다. 담임인 신정(52) 목사는 안식년을 갖고 있는 중이란다.

물이 되어

대광교회는 물과 같은 교회가 되고자 한다. 지역사회에 기쁨과 생명과 은혜가 넘치는 물을 대주는 샘터 같은 교회 말이다. 샘터가 무엇인가.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지친 몸에 활력을 주는 곳이 아닌가. 교회는 바로 그런 곳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가 이런 ‘아쿠아 사역’을 시작하게 된 건 1997년 신정 목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2대 담임으로 부임한 신 목사는 외지인, 특히 젊은 부부가 많은 지역 특성에 주목하고 교회의 변화를 추구했다.

처음 시작한 게 ‘임산부학교’와 ‘엄마랑아기학교’. 남편이 출근한 뒤 텅 빈 집에서 외로움과 싸우는 젊은 부인들에게 뭔가를 해주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임산부학교는 임산부의 건강과 태교, 음악, 모유 수유 등을 가르치고 정보를 공유했다. 엄마랑아기학교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교회에 와서 쉬고 놀 수 있는 식으로 구성됐다.

대성공이었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 바깥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대광교회의 샘터는 계속 늘어났다. 기쁨샘, 생명샘, 은혜샘에 이어 하늘샘, 사랑샘이 만들어졌다. 샘물이 펑펑 솟아나고 수많은 이들이 샘터를 찾았다. 교회는 말 그대로 ‘물같이’ 됐다.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물이면서 누구나 쉽게 여기는 물같이 된 것이다.

교회가 물같이 쉽게 보이자 자연적으로 교회 문턱이 낮아졌다.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접촉점이 만들어지고 급기야 교회와 지역사회가 하나로 되기 시작한 것이다. 축구 등산 꽃꽂이 등 각종 동호회가 아쿠아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카페와 소극장, 어린이집 등이 문을 열었다.

“물과 같이 세상을 향해 스며드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며, 복음으로 광양 지역을 적시고, 땅 끝까지 흘러가 생명을 살리는 귀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김 목사의 거창한 말이 조금도 거창하게 들리지 않는다.

향기 되어

모든 일은 발전하고 진화하게 마련. 아쿠아 사역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교회는 새로운 일을 모색했다. 교회만을 위한 사역, 교인들만에 의한 사역에서 벗어나 교회 밖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게 아로마 사역이다.

이 사역을 시작하면서 사역의 초점을 예수님의 향기에 뒀다. 막연하게 좋은 냄새가 아닌 스스로를 번제물로 드리는 향기 말이다. 예수의 자비와 긍휼에 근거를 둔 희생, 섬김, 나눔을 지역사회에 펼쳐 그분의 향기를 퍼뜨리자는 것이다.

임산부학교 등을 진일보시키면서 아로마 탁아방,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꿈샘 지역아동센터, 아로마 상담센터, 지역웰빙센터, 노인 일자리사업, 아름다운가게, 유기농 매장 운영 등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교역자들뿐 아니라 모든 교인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아로마 사역을 감당하려고 노력한다”는 김 목사의 말을 들으며 아로마센터를 둘러보니 그 말 또한 허언이 아닌 듯하다. 1층 교회 사무실을 빼곤 어디서도 교회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교회 표어나 성경구절은커녕 그 흔한 십자가나 성화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 종합복지시설에 온 것 같다.

이쯤 되자 아쿠아 사역으로 낮아진 교회 문턱이 아예 없어졌다. “엄격히 말해 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긴다(For)고 하기보다는 함께한다(With)고 할 수 있다”는 김 목사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랑으로

사람이 하는 일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고 사상이 있어야 하는 법. 그러면 대광교회가 벌이는 사역의 철학과 사상은? 두 말이 필요 없이 사랑이다. 예수가 실천하며 가르친 사랑, 아가페다.

따라서 교회는 아가페 사역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고백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인이든 비교인이든 아가페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영성쉼터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 목사의 말도 그 일환이라 여겨진다. 아쿠아 사역이나 아로마 사역을 하는 것도 결국에는 아가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대광교회는 1988년 부활절에 광양제철소의 김수진 장로 집에서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형식 목사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됐다. 이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다 93년 4월 현재의 교회당을 완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황량한 들판에 교회당만 외로이 섰다. 하지만 18년 세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광양의 대표적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신정 담임목사의 글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준다.

“아시나요, 그 사랑의 너비와 길이를/ 아시나요, 그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나 같은 죄인도 살리신 아가페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하라신 아가페 사랑/ 아시나요, 피 흘리신 주님의 그 마음/ 아시나요. 헤아려 품어야 할 그 마음/ 나 이제 헤아려 봅니다. 아가페 사랑/ 나 이제 행하려 합니다. 아가페 사랑/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 주님의 사랑이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마음 같게 하소서/ 광양대광교회여! 헤아려 품은 같은 마음이어라.”

섬진강 하구, 그리고 광양만

교회를 나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근의 아담한 동산 위에 세워진 탑이 보인다. 특이하다 싶어 올라가 보니 현충탑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 지역 인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밑으로 눈을 돌리니 광양시내와 멀리 바다 건너까지 보인다. 밑에서는 분명 쨍한 날씨였는데 전방이 뿌옇게 보인다. 광양제철소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때문인가?

한창 공사를 하고 있는 이순신대교가 거의 모양을 갖춘 것 같다. 다리가 완공되면 순천 여수 등으로 이어지는 길이 한층 짧아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의외로 교회가 많다.

다시 광양시내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곳이 섬진강 하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맞다. 여기가 바로 섬진강의 종착지다.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전북 지역과 경남 하동을 휘감아 돌다 이곳 광양만의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에서 본 섬진강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조선시대 왜구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때 두꺼비떼가 맹렬히 우는 바람에 왜구들을 물러가도록 해서 붙여진 섬진(蟾津)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비로소 알게 됐다. 섬진강의 이름도 이 마을에서 유래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갑자기 광양이 물의 도시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섬진강 하구에 광양만을 끼고 있으니 가히 물의 도시라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대광교회가 물 같은 교회가 되고자 하고, 아쿠아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도 무관치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광양=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