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버킷리스트, 그리고 기도리스트

입력 2011-12-21 17:48


또 한 해의 끄트머리에 와 있다. 늘 이맘때면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반성과 새해에 대한 각오로 마음이 분주해진다. 정말, 왜 이리 시간이 빠른지 멀미까지 날 지경이다. 십대 때는 더디 가는 시간이 지루해 남아 있는 달력을 넘겨보기도 했기만 언제부턴가는 가는 시간에 그저 탄식만 나올 뿐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변심한 애인처럼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째깍 째깍, 저 혼자 달려가고 있으므로. 차라리 그 시간에 다가올 새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편이 더 나을 일이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

가만 보니 요즘 버킷리스트라는 것이 유행이다. 한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발 빠르게 한 회사에서는 일 년 열두 달 이 버킷리스트 목록을 적을 수 있는 수첩까지 제작해 자사 홍보수단으로 삼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버킷리스트를 자랑스레 공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버킷리스트가 무엇일까. ‘버킷’이란 원래 ‘죽기 전에 올라섰던 양동이를 발로 차다’라는 뜻의 영어 숙어 ‘kick the bucket’에서 나온 것으로 거기에 리스트가 붙어 말 그대로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일들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사람마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여행이 꿈일 것이고, 어떤 이는 사랑 한번 해보는 것이 꿈일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자그마한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일 것이다.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과 환경이 다르니 그 리스트들 역시 다양할 것이다. 그 꿈들이 있기에 그나마 팍팍한 생활을 견디게 하고, 잠시잠깐이나마 미래에 대한 설렘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답게 사는 일이고, 셋째는 더 많은 곳을 여행해보는 것이며, 넷째는 늦게나마 인륜지대사, 결혼이라는, 그 인생의 큰일을 치러보는 것이다. 그밖에도 많이 있지만 어찌 다 일일이 열거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아직 이 나이에도 하고 싶은 일들은 많다. 하긴 꿈이 나이가 들었다고 없어지는 것이든가. 그 욕망은 고약스럽게도 나이가 들어도 시들지 않고 여전히 내 안의 나를 부추기고 닦달하고 등떠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당연히 글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니만큼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데 좋은 소설을 쓰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언제부턴가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박해지에 대한 순례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미애’로 유명한 일본의 나가사키, 박해로 말미암아 최빈민층으로 전락해 버린 이집트의 자발린들처럼 세계의 박해지를 순례하고 그 감상과 승리와 화해의 모습들을 에세이로 써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 없이 막연한 꿈으로만 품고 있지만 그 역시 언젠가는 하나님이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 아무튼 한 해가 가는 끄트머리에서 버킷리스트 대신 기도제목들을 적어보자. 그러면 신년 들어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보이지 않을까.

새해 해야 할 일들

어느 해인가 신년 예배를 가족예배로 드린 적이 있다. 동생이 거동을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데다 어머님까지 연로해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탓에 1월 1일 아침예배를 가족끼리 둘러앉아 보았다. 그때 제부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신년 예배니만큼 각자가 한 해 소망하는 것들을 종이에 적어내면 그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중보기도였다. 나는 그때 일곱 개를 적어냈다. 가족들의 건강과,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과, 하나님을 더 뜨겁게 섬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들이었다. 어머니의 소원은 가족들의 건강이 우선이었다. 그 한 해, 그 기도제목들이 있었기에 나는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기도제목들을 적어보는 게 어떨까. 그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한 해를 열심히 한다면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도제목리스트. 근사하지 않은가. 내년에는 모든 이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 대표작 ‘비둘기집 사람들’ ‘만두빚는 여자’. 2001년 삼성문학상 수상. 광주(光州)순복음교회를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