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작가대회 산파역 북한통 작가 김형수 “北에도 오렌지족… 김일성大 엘리트들 시장경제 원해”
입력 2011-12-20 18:02
진보적 문학 진영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작가 김형수(52·사진)씨는 문단의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통한다. 그는 2005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작가대회의 산파역을 담당하며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사와 관련해 북한 체제의 속살을 보기 위해 김씨와 20일 전화 인터뷰했다.
-북한 체제 변화에 관해 어떤 전망을 할 수 있는가.
“2004∼2005년 남북작가회의 성사를 위해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북한은 여론 만들기가 어려운 사회라고 느꼈다. 북한은 겉으로는 계획사회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인민의 나라’를 전제로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국가라서 이데올로기적 원론과 현실적 집행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크다. 따라서 그 사이를 비집고 여론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북한 인민들은 현재 김정은을 최고 지도자로 세우는 데 대해 심리적, 이성적으로 동의하고는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전체 몸통이 움직이기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북한에는 친사회주의 세력과 친민족주의 체제가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친사회주의 세력이란 냉전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 친사회주의적 냉전 세력을 ‘20세기 세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친중국세력과 혁명 1.5세대가 그 세력의 중추다. 내가 남북 접촉을 할 때 이들 세력은 늘 자신들의 원칙을 납득시키고자 했다. 이들은 반미결사항전 세력이다. 반면 탈냉전 세력이 있다. 탄력적인 ‘21세기적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다만 시장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네 원칙을 끌고 가야 하는 세력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냉전 세력과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김일성 사후에 꽤나 시간이 걸렸다.”
-김정은이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북한 정권의 딜레마는.
“현재 후계자는 김정은이다. 그건 혈통으로서의 김정은이다. 김씨가 아닌 다른 성을 가진 지도자는 북한에서 상상할 수도 없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냉전 세력들은 한국의 MB(이명박 대통령) 체제 하에서 좀 더 강화돼 있다.”
-탈냉전 세력이란 누구를 지칭하는가.
“젊은 엘리트들이다. 인터넷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바로 그들인데 아시아에서도 유명한 인터넷 세대다. 남북교류 과정에서 남측으로부터 노트북을 선물로 받으면서 성장한 세력이 그들이다. 가수 조용필 평양 공연 당시 암표가 북한 돈 3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표는 원래 당 간부들에게 배분되는데, 배부른 당 간부의 자식들이 표를 내다팔 때 이들 학생 세력은 월급의 2∼3배를 주고 암표를 샀다고 한다. 그들이 북한의 오렌지 족이다. 평양에는 휴대전화를 소유하려는 젊은이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냉전 세력과는 다른 방식의 충성심을 가진 자들이다.”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남한과의 관계를 통해 시장으로 나오려는 세력이다. 냉전 세력과 이들 탈냉전 세력, 양자를 원만하게 컨트롤하기 어렵기 때문에 북한 사회가 하나로 봉합되기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상당 기간 삐걱거릴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에서 이렇게 삐걱거리는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타워가 필요하다. 요즘 러시아도 얼마나 삐걱거리며 요동치고 있는가. 삐걱거리는 남북한에 러시아까지 요동치고 있는데 그러면 동북아 전체가 술렁이게 된다. 이렇듯 김정일 사후의 북한 체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대단히 불안 요소가 높아지고 있다. 남한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영원한 유목민으로서의 ‘칭기스칸’을 주제로 한 장편 소설을 최근 탈고한 김씨는 집필지인 몽골에서 최근에 귀국해 책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