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문 둘러싼 남남갈등 백해무익하다

입력 2011-12-20 17:53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에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이면 남북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등을 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이지, 동요하거나 불안해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국지전 발발 가능성을 우려한 생필품 사재기 현상도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 조문·조의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단체들은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김 위원장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하고 조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바른사회시민회의를 비롯한 보수단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우리나라에 군사도발을 자행한 것 등을 이유로 조의 표명이나 조문단 파견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하고 있다. 탈북단체들은 ‘독재자 종말’을 축하하는 행사까지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도 조문과 관련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조문은 외교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의견도 있고, 천안함·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측 사과가 없는 한 조의는 부적절하다는 견해도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숨졌을 때 극심한 남남갈등을 겪은 바 있다. 학생운동권과 재야세력은 조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분향소를 곳곳에 설치했고, 보수단체는 조문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반박하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국력만 낭비한 부질없는 다툼이었다.

정부는 어제 ‘정부 담화문’ 형식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또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보내지 않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유족의 북측 조문은 허용키로 했다. 진보단체나 보수단체나 다소 미진한 감이 있겠지만, 김 위원장 사망으로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수가 생긴 시점인 만큼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다만, 정부가 23일로 예정된 경기도 김포 애기봉 등 3곳의 성탄 트리 등탑 점등을 유보하도록 교계에 권유한 것은 북측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정으로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