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국민감정과 외교적 현실 사이… 정부 조문·조의 ‘절묘한 고육책’

입력 2011-12-20 18:39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문·조의에 대한 정부의 결정은 절묘했다. 김 위원장 본인에 대한 조의가 아니라 북한 주민을 위로하는 형태를 통해 간접적으로 조의를 표시했고 정부 차원의 조문단 파견은 하지 않는 대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유족의 방북 조문을 허용한 것이다.

조문·조의를 둘러싼 국내 진보·보수 세력의 갈등, 국민감정과 외교적 현실 사이에서 선택한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정부 결정은 이전과 비교해 볼 때 전향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낮은 강도이긴 하지만 조의를 분명히 표했기 때문이다. 정부 담화문은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라고 돼 있다. 김 위원장 죽음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식적 평가나 북한 정부에 대한 메시지 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충분한 위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정부는 또 한정적이긴 하지만 민간 차원의 방북 조문을 허용했다. 여기에는 “북측의 조문에 대한 답례로”라는 명분을 실어 논란을 피해갔다.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하루 전 “2009년 8월 남편이 서거했을 때 조문특사단을 서울에 보내준 만큼 (김 위원장에 대해) 조문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조문 의사를 밝혔다. 우리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조의 표시를 하지 않았고 민간 차원의 조문단 파견도 불허했다.

담화문에 담긴 정부의 고심은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잘 설명돼 있다. 류 장관은 “김 위원장 통치 시기에 남북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 국민과 세계가 잘 알고 있다. 또 북한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안보 위협 세력인 동시에 대화 파트너인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의사결정이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상황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 비상국무회의를 잇따라 열었지만 조의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었다.

보수정권이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표심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임에도 북한에 대해 성의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 사후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꾀하고 향후 남북관계와 6자회담 재개 과정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외교적 필요가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