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보람·정감… “동네신문 만들어 보세요”

입력 2011-12-20 20:58


‘앞서가는 멋쟁이’들이 모인다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은 365일 공사 중이다. 저녁나절까지 우당탕거리던 곳에서 다음날 아침 예쁜 옷이나 향기로운 티를 판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바뀌는 이 거리를 향해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건네는 젊은이들이 있다. “헬로 가로수길!”

이 길을 통해 일터로 들고나는 이들은 2008년 10월 31일 ‘Hello, 가로수길’이란 타블로이드판 무크지를 펴내면서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다. “가로수길을 카페, 옷가게만 즐비한 패션거리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소호, 프랑스 파리의 마레지구, 영국 런던의 브릭레인처럼.”

‘Hello, 가로수길’ 창간 멤버인 배정현(39)씨는 “첫 호가 나올 당시 이곳은 강남 한복판이면서도 임대료가 싸서 처음 독립하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고 소개했다. 국내 쇼핑칼럼니스트 1호였던 그녀도 그런 젊은이 중 하나였다. 2008년 가로수길 옆 골목에 사무실 겸 카페 ‘WASH’를 열었다. 학교 후배로 이곳에 먼저 둥지를 튼 북 디자이너 박수진(37)씨와 의기투합, 다이나믹한 ‘가로수길’을 담은 동네신문을 만들기로 했다.

두 사람은 주머닛돈을 털어 인쇄비 100만원을 마련하고, 주위의 재능 있는 이들에게 글과 그래픽, 사진 등을 ‘동냥’ 했다. “비영리 프로젝트로 신문을 만드는데 도와줄래?”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OK” 했다. 재주꾼들의 참여가 많다 보니 알찬 종이신문에 번듯한 웹진(www.hellostreet.net)도 갖추고 있다.

‘기부와 참여로 진행하는 비영리 프로젝트 신문’ 창간호에는 가로수길에 사는 주민들과 명소,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의 1분 인터뷰 등을 담았다. 이후 가로수길의 작업실, 배달 동네음식 품평기, 가로수길에서 만난 개와 고양이들, 가로수길에서 사라진 것과 새로 문을 연 상점 등을 소개했다.

정현씨와 수진씨, 그리고 1호 때부터 참여한 사진작가 황인철(32)씨, 1호에 실린 ‘기부’ 요청 메시지를 보고 동참하기 시작한 그래픽 디자이너 전용철(36)씨와 컴퓨터프로그래머 강명석(33)씨가 주축 멤버. 이들은 ‘비영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밤샘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놀이처럼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용철씨는 “클라이언트(고객) 요구에 따라 작품을 바꿔야 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이곳은 작가 의도를 그대로 담아 작업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명석씨도 “자기만족감이 큰 작업, 아니 놀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들은 재미, 보람과 함께 의외의 값진 덤도 누린다고 털어놓는다. 인철씨는 “프로젝트하면서 새로운 인맥이 생겨 생생한 정보도 교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는다”고 말했다. 정현씨는 “그동안 서울문화재단, 슈에므라, 앱솔루트 보드카, 하이네켄, 르꼬꼬 스포르티브 등이 협업을 요청해와 젊은 예술가들이 실험적인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자랑했다. 기업이 인쇄비를 부담하는 대신 작가들이 그 기업의 로고 등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해 ‘Hello, 가로수길’에 소개했다. 기업은 홍보와 예술후원이라는 이미지 제고 효과를 얻고, 참여 작가들은 자유로운 실험을 하고, ‘Hello, 가로수길’은 인쇄비를 마련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동네의 소소한 일상이 재주꾼들의 글과 일러스트 사진에 담기면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과 공무원들의 눈길까지 사로잡게 된 ‘Hello, 가로수길’. 지난 15일 올 5월에 이어 2번째로 발간된 ‘Hello, 가로수길’은 특별한 형태로 제작됐다. 그동안 발행된 8회 신문의 정수를 모아 만든 아카이브(기록보관소) 겸 다이어리다. 가로수길에 있는 6개의 숍에서 인쇄비를 기부했다. 신문은 무가지였지만 이번 다이어리는 8000원에 판매한다. 내년 신문 발행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Hello, 가로수길’ 이외에도 동네신문들은 꽤 있다. 서울 홍익대 주변 소식을 전하는 ‘스트리트 H’, 청운동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인 서촌의 소식지 ‘시옷’, 이태원의 ‘사이사이’, 문래동의 ‘문래동네’ 등등. 동네에는 각양각색의 직업과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게 마련이다. 삭막해져 ‘이웃사촌’이란 단어는 속담에서나 존재하게 된 오늘의 도심. 이웃의 따뜻한 정을 되살릴 우리 동네신문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우리 동네신문 만들기’. 새해 첫 반상회 주제로 멋지지 않은가!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