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1년-② 꼼수] 기득권에 대한 냉소·불신 주류 정치문법 집어삼켜

입력 2011-12-20 22:36


올 한 해 대한민국 현실을 통찰해낸 단어는 ‘꼼수’였다. 꼼수란 얕은꾀나 쩨쩨한 수단으로 제 잇속을 챙기는 행위.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꼼수의 세상으로 이해했다. 특히 힘을 쥔 기득권의 언행은 꼼수의 관점에서 재해석됐다. 모든 일에는 보도되고 선전된 명분 대신 진짜 이유가 있다는 인식. 속내는 가시(可視)의 세계 아래 감춰져 있다는 냉소. 꼼수가 발흥한 토양은 기득권에 대한 불신과 의심이었다.

꼼수를 국민적 유행어로 만든 건 시사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였다. 나꼼수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정봉주 전 국회의원, 시사평론가 김용민씨,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만드는 ‘국내 유일의 가카 헌정 방송’이다. 네 남자가 골방에 앉아 현직 대통령을 안줏거리 삼아 질펀하게 웃고 떠드는 정치풍자 라디오.

나꼼수가 세상을 읽는 방식은 일관돼 있다. 누가, 어떤 꼼수를 써서 얼마나 이득을 보는가. 나꼼수는 지난 4월 28일부터 이달 19일까지 총 34회 방송을 통해 BBK사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저축은행 로비, 인천공항 매각 시도, 10·26 디도스 공격사건 등을 꼼수의 관점에서 폭로하고 해석했다. 그중 내곡동 사저와 10·26 디도스 공격사건은 나꼼수에서 처음 제기돼 정국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확인되지 않은 설이 유포되면서 괴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부 인신공격과 막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네 남자 중 ‘안정적’ 직업을 가진 이는 주 기자 한 명. 그래서 주류의 시선에서는 ‘루저들의 골방토크’ 정도로 무시됐다. 하지만 나꼼수는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통과 정국에서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그들의 오프라인 동원력은 어마어마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나꼼수 특별공연에는 5만명 인파(경찰 추산 1만6000명)가 몰려들었고, 경기도 고양에서 시작해 제주에서 마무리된 10개 도시 순회공연은 매회 전석 매진의 신기록을 세웠다. ‘정치의 해’로 불리는 2012년, 나꼼수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의 세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주류는 규정하고 정의 내리고 명명하는 언어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려왔다. 나꼼수가 뛰어넘은 건 주류의 언어세상. 나꼼수의 네 남자는 주류가 만든 논쟁의 규칙을 거부했다. 스스로 만든 링 위에서 그들의 룰을 내걸고 전혀 다른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나꼼수의 언어가 주류의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된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 주류가 나꼼수의 링 위에서 나꼼수의 언어로 싸울 차례가 됐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