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김정은, 軍보다 黨장악력 약해 ‘세습 구축’ 숙제로

입력 2011-12-20 22:25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 내부에 큰 동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특이 동향도 관측되지 않고 있다. 지난 17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북한을 통치해온 절대 권력자의 갑작스런 유고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 최고 이론가로 불렸던 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김정일이 사망하더라도 이미 김정일 측근들이 다 구축돼 있고 한 배를 타고 가는 운명이기 때문에 내란 또는 무정부 상태로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에는 김정일을 대신할 사람이 100명도 넘는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일부 사람들은 북한 독재체제가 붕괴하면 큰 혼란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궤변 중에서도 최고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판단은 이르지만 지금까지는 황 전 비서 예상대로 돼 가고 있다.

황 전 비서가 지적한 대로 현 북한 지도부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체제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김 위원장이 지명했지만 모든 권력 주체가 20대에 불과한 김정은을 서둘러 후계자로 인정한 것은 자칫 권력 공백으로 중동에 거세게 불고 있는 ‘재스민 혁명’ 같은 급변사태가 북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은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명의로 밝힌 김 위원장 사망 발표문에서 김정은을 ‘위대한 영도자’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라고 호칭했다. 북이 ‘대장동지’ 김정은을 ‘영도자’로 호칭한 것은 처음이다. 아울러 ‘혁명 계승자’라고 한 것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권력세습을 받아들인다는 충성서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김정은이 신속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부상할 수 있는 원동력은 김 위원장이 생전에 당·정·군 요직에 심어놓은 김정은 후견세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에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김정은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 또한 김정은 체제를 안착시키는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당장 권력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또 김정은이 권력을 확실히 장악할 때까지 북은 과도기적으로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김정은은 유훈통치 형식으로 무대 뒤에서 권력의 외연을 확장해 나갈 것이란 설명이다.

관건은 얼마나 많은 권력 엘리트들이 김정은 편에 서느냐에 달려 있다. 친족에선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고모 김경희 당 경공업 부장이, 원로그룹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등이 후견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는 이영호 총참모장, 김원홍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이 핵심측근으로 분류된다. 김기남 최태복 최용해 당 비서 등은 당에 포진해 있는 든든한 후원자다.

김정은은 당을 통해 세력을 확장했던 아버지와 달리 군과 공안기관을 통해 권력기반을 형성해 왔다.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실질적인 군 지휘권을 행사하는 등 군 장악력은 높은 편이나 상대적으로 취약한 당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앞으로 남은 숙제다.

이흥우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