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평화의 소녀상’

입력 2011-12-20 17:49

동상이나 비석은 대상을 기억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교과서에 실리는 것 다음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인물의 행적부터 그것이 놓이는 입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한국마사회 본관 앞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김동하 전 마사회장의 흉상이 대표적이다.

동상은 조형성도 중요하다. 이달 초 포스텍 노벨동산에 세워진 박태준 전 포철 명예회장의 동상은 중국작가 우웨이산이 제작했다.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에 들어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석상 역시 중국 출신의 레이 이신이 맡았다. 고매한 덕성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지만 권위적인 인물 조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평화비’는 어떤가. 조각가의 작가 정신이 치열하다. 미디어에는 의자에 앉은 소녀상이 많이 나왔지만 하이라이트는 바닥에 오석(烏石)으로 깐 그림자다. 몸은 소녀인 데 비해 그림자는 쪽진 머리에 등 굽은 할머니다. 소녀의 어깨에 새가 앉았다면 할머니의 가슴엔 나비가 새겨졌다.

메시지 전달력도 탁월하다. 분노와 슬픔을 앙다문 표정과 불끈 쥔 두 손으로 표현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수요집회가 아니어도 이 소녀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날씨가 추우면 모자와 목도리를 씌우고 맨발을 가려준다. 경찰이 대사관 주변을 삼엄하게 경비하니 함부로 철거도 못한다.

이 평화비를 만든 이는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다. 세종대왕이나 박정희의 동상을 만든 이에 비해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서울역사박물관 앞 전차를 꾸미고 있는 ‘열차와 지각생’이 이들의 작품이다. 1960년대 어느 아침, 등교 시간에 쫓긴 중학생이 허겁지겁 전차에 오르자 도시락 든 어머니와 모자를 집은 누이동생이 쫓아오고 이를 본 학생이 “스톱!”이라고 소리 치니 기관사가 놀란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다.

작가는 살아있는 조각을 꿈꾼다. 단순한 브론즈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미술품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작품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절한 고통을 떠올리고, 역사와 미래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다만 이름은 정리됐으면 좋겠다. 지금 공식으로 불리는 평화비의 ‘비(碑)’는 돌에 글을 새겨 세우는 것이다. 기념비에는 장식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비석이라는 개념은 같다. 평화비의 모양을 보면 조형물이 분명하니, ‘평화의 소녀상’ 정도가 어떨까.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