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김정은 체제 안정화 여부 북미관계 통해 드러날 것”

입력 2011-12-19 22:13


김정일 사후 북한 체제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관전 포인트는 김정은 1인 후계체제가 자리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될 것인지에 모아졌다. 후계체제가 굳어지게 되면 그 징후는 남북관계보다 북·미 관계에서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왔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주변국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정일 이후 북한 체제=김정은 중심의 후계체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의 불안정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아직 김정은 체제가 안정되지 못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향후 지도체제 모습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서주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처음 보도했을 때의 핵심은 ‘영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것이고 장례위원장도 김정은”이라며 “아직 젊지만 그를 후계자로 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이미 일정 부분 권력이 이양돼 김정은 중심 체제가 만들어져 있고 장성택 등 후견 세력도 있어 내부 불안정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예측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다.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은 “김일성 사망 당시보다 50여 시간 늦게 김정일 사망 사실을 발표했는데 그 시간 동안 지도부에 대한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박 전 비서관은 “북한은 주민들에게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현 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하면서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쓸 것”이라며 “김정일이 과로로 사망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보도 등도 주민들의 애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김정은이 체제를 확실히 장악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며 “북한 입장에선 권력 엘리트의 동요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일 유고시를 대비하긴 했지만 김일성 사망 당시 김정일의 위상과 비교해볼 때 현재 김정은의 위상은 훨씬 취약하다는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도 “김정일은 오랫동안 준비한 지도자였지만 김정은은 무대에 나온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인물”이라며 “후계정권 수립이 원활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이 지명한 사람이 아니라 김정일이 지명했던 사람들”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김정은을 표면에 내세우겠지만 향후엔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김정은으로의 후계 과정에 불만을 가진 40, 50대 장성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다”며 “군부의 새로운 지도자들이 충성심을 보여줄지는 김정은의 지도력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관계 및 핵 문제=북한의 대외관계가 당분간 소강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체제 단속이 우선인 만큼 내부 문제에 집중한 뒤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야 대외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대외 대화 재개까지 석 달 정도 걸렸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흐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성한 교수는 “김정은 체제에 대한 상당한 자신감이 축적된 뒤에나 미국이나 남한을 상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북 및 북·미 관계 등은 당분간 소강상태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내부에서 엘리트의 동요가 없고 후계체제가 든든해졌다고 판단한다면 분명 신호를 보내올 것”이라며 “그 신호는 남측보다는 미국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윤덕민 교수는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엔 북한이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대화를 통해 제네바 포괄합의를 만든 바 있다”며 “이번에도 그때처럼 기존의 관계를 그대로 갖고 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처럼 기존 북·미 관계의 틀을 김정일 사후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는 것이다.

임수호 수석연구원은 “외국의 조문을 일절 받지 않는다고 발표한 만큼 당분간은 대미는 물론 대중 접촉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재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주석 책임연구위원은 대외 문제와 관련, 북한의 기존 입장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서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북핵 등에서 어떤 입장인지 알려진 바 없지만 기존 노선을 당장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과감한 정책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재진 전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일 사망은 북한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혁 개방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며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의 권력은 결국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있어야 정당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

◇남북관계 전망 및 우리의 대처=윤덕민 교수는 “김일성 사망 당시의 예를 보면 조문을 트집잡아 남북관계가 악화됐던 예가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내부 체제 결속을 위해 외부에 위협이나 적을 상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남북관계에 당분간 냉기류가 흐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병광 연구위원도 “최근 들어 6자회담이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었는데 돌발 사태가 발생해 북한이 불안정해졌다”며 “북한은 그동안 불안정 상태에 빠질 경우 도발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임수호 수석연구원은 “북한으로서는 내부 동요를 막는 게 최우선인 만큼 도발 같은 행동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우리도 가능하면 북한을 자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틀어질 만한 자극적인 행동이나 언사를 자제하고 최대한 북한을 다독거려 놓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도 “그동안 좋지 않았던 남북관계를 수습하던 상황에서 김정일이 사망해 안타깝다”며 “현명하게 대응하면 (남북관계가)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불필요한 자극을 하지 않는다면 도발 등의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서주석 책임연구위원은 “지금 우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내부 동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인데 그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돼 있다시피 해서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서 책임연구위원은 “우리 정부는 상황을 조기에 안정시키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원 전 비서관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는 “북한은 불과 2년 전인 2009년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때 조전을 보내고 조문단도 보냈다”며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신경질적인 대치국면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교수도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전향적인 해법을 만들어 가려면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 대한 유감이나 조의를 표명하는 게 한 방법”이라며 “이명박 대통령도 내년 3월 핵정상회의에 김정일 위원장을 초청한 바 있는 만큼 명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흐름을 어떻게 관리해갈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승훈 김지방 정동권 기자 shjung@kmib.co.kr